20220122 떠나는 자와 따르는 자 (요한복음 6장 60-71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마시고, 자신의 살을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사람들은 매우 난감하여 했습니다. 어찌 유대인들이 식인종도 아니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 의아해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예수님을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하셨다는 이유만으로도 예수님을 떠났다면, 이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며 말씀하셨습니다. 61-62절 말씀입니다.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 가르침이 너희 마음에 걸리느냐? 만약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마음에 걸린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은 이들에게 더욱 더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더라면,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너무 몰랐고, 이는 이들의 관심이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것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 하다 보면, 도무지 우리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판단과 달라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명히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면 그만 가는 것이 맞는데, 말씀의 인도하심은 계속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울 때, 말씀이 걸림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말씀대로 살기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척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걸어가지 못합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꽁꽁 묶여 잡히게 될 것이란 예언을 듣고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그의 목숨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63절 말씀을 봅시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여기서 육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어둠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영은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아가는 빛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말씀을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앞서 말씀하신 살과 피의 가르침이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의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가르침이셨습니다. 6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하는 무리들이 있었음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약 1년 뒤 미래의 사건 즉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길 것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5절 말씀을 봅시다. “(6: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구원받은 자는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이라는 사실을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떠났고, 심지어 제자들 중에도 많은 이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시며 “너희도 가려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 대 베드로의 대답을 주목해 보십시오. 68-69절입니다.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는 그 자신과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총 세 부류의 무리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말씀이 어려워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삶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비웃으며 그를 떠났습니다. 두 번째 무리는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아니하고 중간에 돌아선 자 즉 예수님을 떠나는 자와 배신하여 파는 자입니다. 이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소원과 욕심을 이뤄줄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럴 계획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하여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 셋째 무리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임을 믿었으며,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믿으며 예수님의 곁을 지킬 것을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이 요구하는 삶이 내 자신이 꿈꾸고 원하는 삶과 다르다는 이유로 예수를 떠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끝까지 그를 붙잡으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분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가룟 유다처럼 내 탐욕을 위해 예수님을 배신해서도 안 됩니다. 베드로처럼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그의 곁을 지키십시오.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의 의리를 지킵시다. 세상 끝나는 그 날까지 어떤 어려움에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며 따라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