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인사가 대신 적혀 있습니다. 바울은 총 여섯 명을 언급합니다. 이 중 세 명은 유대인이고 나머지 세 명은 비유대인입니다. 먼저 유대인 중 첫 번째 사람은 ‘아리스다고’ 입니다. 그는 본래 데살로니가 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 그와 함께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은 아리스다고를 가리켜 ‘나와 함께 갇힌 자’로 소개합니다. 본래 이 표현은 전쟁 때 포로로 함께 붙잡힌 경우 사용합니다. 즉 바울은 아리스다고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역하는 가운데 함께 감옥에 갇힐 정도로 충성스러운 자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 중에는 평상시에는 용맹해 보이지만, 막상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가 벌어지면 겁을 먹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에는 믿음이 좋아 보이는 성도인데, 막상 삶에 고난과 환난이 찾아오면 그 좋아 보이던 믿음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불만으로 반응하거나 하나님의 역사와 도움을 불신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 어떠한 어려움에도 믿음을 굽히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충성스러운 자, 그런 사람이 바로 아리스다고 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폭동이 일어났고 큰 고초를 겪게 되었습니다. 바울 편에 섰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거나, 몽둥이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아리스다고는 바울 곁을 지켰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충성스러운 일꾼이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마가’입니다. 마가는 바울과 함께 1차 선교여행을 떠났던 인물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가는 중도에 선교를 하차합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될 때 바나바는 그의 조카인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고 했고, 바울은 마가를 데려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투게 됩니다. 그 결과 바울은 바나바와 마가를 두고 따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건 이후로 약 13년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는 이후 베드로와 함께 사역했으며, 바울과도 화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마가를 골로새 교회로 보내며 특별히 그에게 당부한 것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가가 도착하면 잘 영접하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바울이 마가를 아끼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다투었고, 마가는 선교를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은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거짓말을 반복해서 했고, 야곱은 아버지를 속였고, 모세는 사람을 돌로 쳐 죽였고, 다윗은 간음을 저질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바울이 마가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마가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마가를 용서하고 용납함으로써 그는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주십시오. 실수하고 잘못해도 용서하고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11절을 보면 ‘유스도라 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예수님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 사람의 이름을 ‘유스도’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이렇게 세 사람이 골로새 교회에 문안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11절을 보면 바울은 저들을 소개하며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할례당이라는 것은 이 세 사람이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세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 사람이 함께 세워갑니다. 아무리 바울과 같이 탁월한 사역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 곁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코너스톤 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봉사하고 섬기는 귀한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열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의 ‘위로’가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바울의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힘이 들고 지친 날에도,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이 분들의 진실한 섬김을 볼 때면 제 마음에 큰 격려가 되고 힘이 됩니다. 참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 예수님의 꿈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마음에 큰 기쁨이고 위로가 되는 분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것만큼 귀하고 복된 인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바울은 그와 동역하는 할례당 즉 유대인 세 명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바울은 비유대인 즉 이방인 세 명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에바브라’입니다. 그는 골로새 도시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운 골로새 교회의 목사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12절에 에바브라를 가리켜 ‘그리스도 에수의 종’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에바브라를 소개한 이 표현 하나 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한 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종입니까? 그리스도의 예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현재 에바브라의 몸은 골로새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로마에 있었으나, 그는 변함없이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12절에 ‘항상’이란 표현과 ‘애써 기도하여”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에바브라는 언제나 성도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했던… 그 만큼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뜻 안에서 성숙한 자로 자라가고, 믿음으로 굳건히 서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또한 13절을 보면 바울은 에바브라를 가리켜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한 사도 바울이 볼 때에도 정말 열심히 수고한 사람이라고 인정 받을 정도로 에바브라는 정말 열심히 사역한 사람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이어서 등장하는 바울의 또 다른 비유대인 동역자들은 ‘누가’와 ‘데마’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쓴 사람으로서 ‘사랑 받는 의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부터 동행했고, 3차 여행, 예루살렘 여행, 로마의 압송까지 모두 다 함께 한 사람입니다. 앞서 소개한 아리스다고처럼 누가 역시 힘들고 어려운 선교 여정 가운데도 도망치지 아니하고 끝까지 바울 곁에서 고난을 함께 견뎌낸 사람입니다. 사랑받을 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바울이 참 부럽습니다. 그에게는 이처럼 하나님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귀한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문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제게도 이처럼 자랑할 만한 귀한 동역자 분들이 코너스톤 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끊임없는 열정과 사랑으로 함께 사역하고 함께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초대하고 또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