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9 평강과 말씀이 다스리게 하라 (골로새서 3장 12절 ~ 17절)


아무런 자격 없고, 상처 뿐인 인생인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신랑 되시고,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영광의 참 의미를 알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사람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왕족의 결혼식에 참여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내가 가진 것이 많거나 노력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식에 초대 받은 사람이 아무렇게나 입고 식장에 갈 수 없고 깨끗하고 말끔한 예복을 입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 받은 우리들도 더러운 죄를 입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 우리의 예복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로, 긍휼은 불쌍하게 여기는 연민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우리를 선택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처럼 이웃들을 향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무관심하지 않고 동정 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둘째로, 자비란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들을 향하여 상냥함과 친절한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셋째로, 겸손 입니다. 겸손이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는 자세 입니다. 넷째로, 온유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유 역시 겸손과 비슷한 단어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오래참음 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입힌 해에 대하여 보복하지 않고, 중상 모략을 견뎌내며 사랑으로 용서하는 자세가 바로 오래참음 입니다.
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가 입어야 할 이 다섯 가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태도와 자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고, 서로 의견이 달라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때에도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13-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무개 집사님 왜 저렇게 하지?” 불평을 쏟아놓고 싶고 불만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서로의 실수, 허물을 들추지 말고 그것들을 사랑으로 덮어주라고 말했습니다. 13절에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습니까? 대가 없이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타인을 용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온몸을 온전히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랑이 없으면 교회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반대로 사랑이 있으면 서로의 다름이 도리어 아름다운 조화를 천상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교회가 하나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 없이는 결코 교회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녀들 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주어진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그가 받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밉고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향하여,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3절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5절 하반절 말씀을 보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늘 스스로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의도적으로 매일매일 감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 새 생명 감사합니다.”, “하나님 새 날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새 소망 주심에 감사합니다.” 매일 이런 감사의 고백이 넘치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적게는 1도 크게는 100도까지 감사 지수를 나타내는 온도계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요즘 우리 마음 안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감사 지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내 어려운 상황과 힘든 환경만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 지수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업이 어렵습니다. 건강을 잃어서 마음이 답답합니다. 물질이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이 채워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내게 닥친 문제와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영으로 채울 때 임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게 될 때 우리의 감사 지수는 올라갑니다. 16절을 보니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는데 무슨 마음으로 합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부르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물을 떠난 생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 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의 영혼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황폐해져 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메말라 갈수록 삶이 곤고 해지고, 살맛조차 안 납니다. 인간의 마음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깨지고, 낙심하고, 황폐해져 가기 십상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스스로 감사하려고 하지 말고 17절에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자신만 보면 그리 감사할 일이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리어 불평과 불만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 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지금 몸은 좀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생명 때문에 웃으며 오늘 이 하루를 살아 갈 수 있고, 사업이 힘들고, 가정에 어려움이 있어도 여전히 내 삶의 참 소망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함께 머물고 있기 때문에 미소를 띠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입어 하는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어떤 분들은 17절 말씀을 보며 반감을 갖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어떻게 삶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렇게 반응하는 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 가난할 때 부하게 하시는 분, 병들었을 때 치유자 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지고 대신 저 잔인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놀라운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계시면 족합니다. 우리가 지금 각각 어떠한 형편과 상황에 처해 있든지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의 감사 지수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매일매일 감사하는 삶을 훈련하십시오. 입으로 감사를 고백하시고, 마음에 감사의 영성이 머물도록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머물게 하므로 감사를 더하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