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구약성경의 소선지서 중 한 권인 ‘요엘’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엘서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하며, 메뚜기 재앙을 통해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죄의 길로 돌아설 때 재앙을 통해 징계 혹 경책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면 언제나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특별히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요엘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아 회개하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바로 ‘메뚜기 재앙’ 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성경 속 메뚜기 재앙 스토리는 하나님께 모세를 통해 애굽에게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8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입니다. 그와 같은 메뚜기 재앙은 가나안 땅에서는 여태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애굽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재앙’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발생한 메뚜기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는지 깨닫게 하며, 동시에 두려움을 통해 죄를 회개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엘서 1장은 갑자기 불어 닥친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게 된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엘은 백성들에게 이런 재앙을 살아 생전에 경험해 본적이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욜 1: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성경학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연도를 대략 B.C. 1440년경으로 추측 합니다. 오늘 본문이 B.C. 830년경에 기록된 것이니 출애굽 이후 대략 600년 정도 지난 시기입니다. 따라서 애굽에서 메뚜기 재앙을 경험한 세대는 이미 오래 전에 다 죽었습니다. 그 이후 가나안 땅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메뚜기 재앙이 일어난 것이죠. 요엘은 노인들과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재앙을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살아 생전 한 번도 경험해 본 일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메뚜기 재앙을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욜 1: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메뚜기 사건을 이스라엘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재앙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후손들이 메뚜기 재앙 이야기를 통해서 죄를 지었을 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그들의 삶에 찾아올 수 있는지 경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을 섬기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후대에도 메뚜기 재앙이 주는 의미를 잊지 말게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큰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회복과 구원의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4절을 보면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 이렇게 네 가지 다른 곤충의 이름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히브리어로 보면 사실 이 네 가지 모두 메뚜기 종류의 곤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메뚜기라고 하지 않고 네 가지 다른 이름을 다 쓴 것일까요? 그것은 메뚜기 재앙이 시간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임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즉 메뚜기 재앙은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거듭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죄와 함께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한 번만 경고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징계하시고 경고하십니다. 수차례의 메뚜기 재앙이 왔듯이 하나님은 죄 가운데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의 삶을 계속해서 징계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기를 경고하십니다.
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욜 1:5)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여기서 말하는 ‘취하는 자들’은 실제로 술에 취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죄악에 빠져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단 포도주’는 세상의 달콤함 유혹을 의미합니다. 선지자 요엘은 백성들에게 이제 세상의 모든 죄악을 끊어버리고,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보며 눈물로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은 메뚜기 떼는 그 숫자가 많고 어떤 종류의 물건도 다 부수어 삼켜 버릴 정도로 그 파괴력이 컸습니다. 6-7절을 봅시다. “(욜 1:6)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욜 1: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선지자 요엘은 이스라엘에 내린 메뚜기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무엇이든지 갉아먹는 메뚜기의 세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사자의 이 같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가릴 것 없이 다 갉아먹은 결과 이스라엘에 있는 나뭇가지가 껍질이 벗겨지고 다 하얗게 변할 정도였습니다.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라 말했습니다. 8절입니다. “(욜 1:8)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마치 약혼자가 사망하여 슬픔에 빠진 처녀 같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라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랑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큰 고통에 빠졌음을 깨닫고 슬퍼하며 통곡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요엘 선지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도 슬퍼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메뚜기 떼가 와서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로 바칠 제물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오는 ‘소제’는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곡식제사를 의미하고, ‘전제’는 제단에 음료를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 두 제사 즉 ‘소제’와 ‘전제’ 때 사용해야할 곡식이나 음료가 메뚜기 떼로 인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밭이 황무하게 되어 농부들은 밭의 소산과 밀과 보리가 없고, 포도원을 운영하는 자들의 포도주는 말랐습니다. 나무란 나무들도 메뚜기 떼가 다 갉아먹음으로 열매 하나 없이 모두 시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국가적으로 큰 재앙이 임했음으로 제사장들이 먼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굵은 배를 입고 크게 슬퍼하며 회개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면, 밭의 소산이 없어지고 나무가 마르니 농부가 부끄러워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 즐거움은 결국 메뚜기 재앙과 같은 슬픔과 고통을 우리 삶에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찾는 즐거움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즐거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없는 세상 즐거움입니까?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안에 머물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