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4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사기 21장 1~12절)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베냐민 지파는 남자 6백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광야시대를 기록한 민수기 26장에서 2차 인구조사 할 때만해도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숫자만 45,600명이나 되었습니다. 본문은 사사기 시대이니까 그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내전으로 인하여 베냐민 족속은 멸절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베냐민과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한 지파인 베냐민을 사라지게 할 만큼 큰 전쟁을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미 그들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들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대로 두면 베냐민 지파의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집니다. 이에 이스라엘 지파들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미스바 총회 때 올라오지 아니한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을 칼로 치고, 그들 중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어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는 것이 이들의 해결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 해결 방법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폭력을 휘두른 자들을 나무라면서 자신들도 이웃들을 헤치는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 4백 명의 젊은 여자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아내로 주었으나, 여전히 베냐민 지파 남자 2백명이 결혼할 여인이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까? 매년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이스라엘 처녀들이 실로에 올라옵니다. 그 때 몰래 기다렸다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납치해 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딸을 준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여인을 택하여 데리고 간 것이 되기 때문에 딸을 그들에게 주지 않기로 하나님께 약속했던 자신들의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사기 21장을 읽으면서, “이런 방식으로 해결했나 보구나?”하고 웃어 넘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택한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방법들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는 처녀 2백명을 납치해 가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는 무고한 여인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이들 모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왜 이처럼 이스라엘 지파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싫어할 만한 모습으로 가득한 것일까요? 25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 시대의 잔혹한 모습은 모두 다 사람들이 왕 되신 하나님의 뜻을 다르지 아니하고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대로 행동한 결과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뜻과 생각에 옳은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결국 다툼과 전쟁 그리고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그와 같은 모습으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전쟁은 끝이 없었고, 남을 위한 태도보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에 분열과 다툼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한 동족끼리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도 바로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각자 그들의 탐심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사사기 19-21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었습니다. 레위 사람의 첩은 기브아 불량배들에게는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죽은 이후에도 남편 레위인에게 그 주검이 조각났습니다. 이스라엘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야베스 길르앗 여인들은 베냐민 지파 남자들과 강제 결혼을 해야 했고, 실로에 올라가 여호와의 명절을 축하하던 여자들도 베냐민 사람들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붙잡혀 갔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각자 자신이 같은 옳은 생각과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결국 세상에는 힘과 지위가 없는 약자들이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보게 됩니다. 강자들이 자신의 탐심을 위해 약자들을 괴롭힘으로 말미암아 힘없고 연약한 이들이 고통 하며 신음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불의하고 불공정한 세상입니다. 사사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이방인과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공동체의 섬김과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삶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이웃들을 돌아보는 사랑과 나눔이 있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원동력은 바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 시대는 결국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낸 사람들이 얼마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자신의 탐심과 탐욕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며 분열과 다툼만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하나님을 우리 삶 가운데 왕의 자리에 모셔 두고, 주님만을 위해 살아갈 때, 우리는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주님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곳에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와 같은 분을 우리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영적 사사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만은 세상의 주류를 벗어나 오직 왕 되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