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7 레위인과 첩 (사사기 19장 1~10절)

오늘 본문 사사기 19장 1절을 한 번 보십시오. 말씀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성경을 한 장만 앞으로 넘어가 보십시오. 사사기 18장 1절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한 장만 더 앞으로 가서 사사기 17장 6절을 보십시다.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에서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보이십니까? 사사기는 무엇이 없는 시대 입니까? ‘왕’이 없는 시대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인간이 왕의 위치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그의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기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갔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참 왕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자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사람들이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르침이나 율법의 규례를 따라 삶을 살아가지 않다 보니 결국 마음의 탐욕과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탐심과 정욕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사회에 나타나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폭력’과 ‘성적 타락’ 입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이스라엘 사회에 나타나는 이 두 가지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레위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절을 보니까 그가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서 첩은 두 명 등장합니다. 한 명은 기드온과 결혼하여 아비멜렉을 낳은 첩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레위인의 첩입니다. 고대 근동 사회의 문화로 접근하면 첩은 정식 부인보다 낮은 지위를 갖고 있으며, 정식 부인이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한 경우에 첩을 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그보다는 성적인 욕망을 위하여 계약적으로 첩을 맺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레위인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하여 첩을 데리고 있다는 것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이제 보겠습니다만 그는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았습니다. 사사기는 이 한 레위인의 모습을 통하여 사사 시대의 전형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레위인의 첩이 “행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의 첩이 그를 거슬러 행음하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번역은 “첩이 그에게 화가났다” 또는 “그를 싫어하다”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첩이 레위 사람을 피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떠났을 때 레위인이 그를 찾아가서 다정한 말로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레위인의 첩이 ‘행음 했다’는 해석보다는 ‘첩이 레위인을 대항하여 화가 났다’는 해석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레위인과 첩 사이에 불화가 생겨 첩이 남편을 떠나 베들레헴 친정집으로 떠난 것이죠. 첩이 집을 떠난 지 넉 달이 지났습니다. 아마도 그 동안 레위인의 마음에 쌓였던 첩을 향한 분노와 앙금이 가라앉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첩과 화해할 마음이 들어 그녀를 찾아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길을 떠날 때 자신과 첩을 태울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면 그가 첩을 데리고 오겠다는 의지가 단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은 베들레헴에 도착했고, 첩은 그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여자의 아버지는 레위인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그도 그러할 것이 출가한 딸을 다시 집에서 데리고 있는 것은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던 시절입니다. 게다가 레위인이 먼 길을 마다하고 딸을 다시 데려가기 위해 왔으니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레위인이 매우 반가웠을 것입니다. 이 때부터 레위인 사위에 대한 베들레헴 장인어른의 아낌없는 환대가 시작됩니다. 당시 풍습에 따르면 사위를 대접하는 기간은 보통 3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머물고 쉬어 가라는 장인의 권유로 레위인은 베들레헴에 무려 5일이나 머물게 됩니다. 이 당시 레위인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사명은 온데 간데없고, 자신의 첩을 찾기 위하여 허송세월 하는 레위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레위인의 모습은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였던 삼손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사로서 맡은 이스라엘 구원이란 사명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자신의 탐욕과 육체적 정욕만을 좇아 살아갔던 삼손, 그 역시 자신의 삶을 허송세월 하며 살아갔습니다. 이것이 왕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순간 인간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삶을 의미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인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열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육체적 탐욕을 위해 첩을 두고, 첩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육체적 탐심이 그의 삶을 움직이고 있는 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깨달으셨습니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탐욕과 육체적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허송세월 하는 허무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계속되는 장인의 환대를 뿌리치지 못하던 레위인은 가장 좋지 않은 타이밍에 베들레헴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날이 저물려고 하는 늦은 시간에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까지 험한 길을 걸어가는 위험한 여정을 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레위인이 얼마나 무분별한 사람이며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인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결국 절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사명을 버린 이 한 사람의 레위인 때문에 나중에 결국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 하나가 사라질 정도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왕은 누구입니까? 나 자신이 왕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삶의 왕입니까? 만일 내 자신이 내 삶의 왕이라면 우리들은 영적 사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 빨리 우리 자신이 보좌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참 왕 되시는 자리에 앉도록 주님만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사 시대를 종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이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그가 속한 한 가정, 한 교회, 한 사회가 변화합니다. 우리 삶에 거짓 왕들을 몰아냄으로써 영적 사사시대를 끝내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참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