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는 암몬과 싸우기 위해 전쟁에 출전합니다. 이 때 입다는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을 하게 됩니다. ‘서원’이란 하나님께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수기와 신명기는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으며, 서원을 이행하지 못한 경우 속건제를 드려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더 깊은 헌신을 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약속이므로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속 주인공인 입다는 목숨을 건 전쟁터에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긴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한 사실에 대해서는 비난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다가 서원한 내용은 전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11장 30-31절 말씀을 봅시다. “(11: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값진 제물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신제사 즉 사람을 죽여 제사를 위한 제물로 드리는 행위는 이방종교에서나 행해지던 것이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거나 기뻐하시는 제사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흰놈의 골짜기’란 이름의 지명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서쪽에서 남쪽에 걸쳐 있는 골짜기인데, 이곳에서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행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죄악 때문에 이 골짜기가 살육의 골짜기로 불러질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미 이방 종교와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입다에게도 인신제사가 익숙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입다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바로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제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입다의 모습을 통해서 이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엿보게 됩니다.
지금 본문 속 입다는 자기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십시오. 신앙은 열정만 가지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혜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지혜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별하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성경을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사사기의 비극은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레위인들이 역할을 다 감당하지 못한 것과 말씀을 배워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버리고 우상에게 돌이킨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독교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보십시오. 기독교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없이 열정만 가지고 행해진 대표적인 사건이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이교도로부터 탈환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셀 수 없이 많은 일평생 전쟁을 위해 살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1095년부터 1291년까지 행해진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예상 숫자가 백만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 칼을 들고 이교도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전파를 하는 삶을 살아갔다면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겠습니까? 그것이 또한 하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이 되었을까요?
독일에서 히틀러와 나치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수많은 독일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그들의 통치 방법이 하나님의 뜻과 맞다고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무수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유럽의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기독교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행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시간이 히르면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무지하고 어리석었는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 역사 앞에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입다의 이야기로 돌아와봅시다. 입다는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자신이 고향에 돌아올 때 제일 처음으로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을 잡아 제물로 바쳐 하나님께 제사 드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 한다는 일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서원으로 삼았으니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입다 앞에 누가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하러 나왔습니까? 바로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34절 말씀을 봅시다. “(11: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그의 무남독녀라” 이 얼마나 충격적인 장면입니까? 입다의 서원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딸을 잡아 죽여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입다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요? 비록 서원을 했어도, 그것이 비성경적인 내용이거나 하나님의 방법과 맞지 않는다면 그 서원을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 했어도 인신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는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자신이 하나님께 함부로 입을 연 사실에 대해서 회개하고 뉘우치는 의미의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진짜 비극은 이스라엘 중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내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입다는 자신의 서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고, 그것을 철회해도 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어리석은 서원 때문에 그의 사랑하는 외동 딸을 죽여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혜가 없이 열정만 있는 신앙생활은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더욱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더욱 열심히 분별하십시오. 그리하여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하도록 하십시오. 오직 그것만이 우리의 열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도록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배움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는 지혜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명철을 익히고, 그로 말미암아 올바른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