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은 여러 개의 족속으로 구성된 연합 왕국입니다. 19절에서 말하는 “열왕”은 다름 아닌 가나안의 여러 왕들을 가리킵니다. 북부 가나안의 여러 도시 국가들이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었고, 그 동맹군의 총 지휘관의 이름이 바로 ‘시스라’입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고 기록했습니다. 즉 가나안 동맹의 총 지휘관 시스라가 이스라엘과 싸웠으나 한 푼의 탈취물도 빼앗아가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은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압박했으나, 기손 강 전투 이후에 상황은 역전되었습니다. 도대체 기손 강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절을 봅시다. “(5: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이 말씀은 바람, 벼락, 폭풍우와 같은 일기의 변화가 하늘로부터 일어나 시스라 군대와 싸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스라가 가진 구백 대의 철 병거와 싸워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일기를 변화시키셨고, 기손 강이 집중 폭우로 인해 일순간에 범람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스라가 그토록 자랑하던 철 병거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21절을 봅시다. “(5: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기손 강이 한 순간에 범람하여 가나안 군사들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적군이 자랑하던 철 병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던 철 병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폭우를 내리심으로 말미암아 철병거가 범람한 강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시스라와 그 군대는 생각지도 못한 빗물로 인해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21절 후반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승리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나오는 도망치는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말을 타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은 전쟁에서 패주하여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말굽소리가 땅을 울리며 도망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재력을 자랑하는 부자가 집에서 혼자 떡을 먹다가 그만 떡이 목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랑하는 것들을 정말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철 병거를 믿고 진격하던 시스라의 최후를 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고, 도와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시편 127편에 나오는 지혜자 솔로몬의 시의 내용을 기억하십시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않으시면 건축자들은 헛수고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지키고 서 있는 것도 헛일이다. (시편 127:2) 너희가 일찍 일어나는 것도, 늦게까지 자지 않으며 고생해서 얻은 것을 먹는 것도 헛되다”
계속해서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그녀는 이스라엘이 곤경에 빠졌을 때 힘을 내어 적들을 치는데 돕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하여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23절을 보면 ‘메로스’라 이름하는 지명에 대해서 드보라가 저주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삿 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메로스가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마리아 북방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도시라고 추정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남방에 위치한 도시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도시의 위치가 어찌되었든 드보라는 이스라엘 형제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주하라고 말했습니다. 23절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저주하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외면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함께 신앙 생활하는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짊어지고 아픔을 같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드보라는 메로스와 반대로 적군 총사령관 시스라를 죽인 헤벨의 아내 야엘을 칭찬했습니다. 야엘은 위협을 무릅쓰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그를 죽였습니다. 드보라는 이처럼 용감하게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한 야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자신의 안위와 편안함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형제들을 섬기는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형제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선포되었고, 형제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에게는 복이 선포되었습니다. 형제의 아픔을 보고도 메로스 사람들 같이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마치 강 건너 불구경 대하듯 무관심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받을 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형제 사랑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 받을 복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삶만의 안일만을 추구하느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복음과 사랑의 사명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드보라의 노래는 적군 시스라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아들의 병거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녀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분명 전쟁에서 이겨 노략물을 많이 얻어 가지고 오느라 늦나보다 하고 시스라의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이미 시스라는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의 총 군대장관이 그 당시 천대받고 무시 받는 한 무명의 여인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을 기다리는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원수 시스라의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부각시켜 줍니다. 드보라는 31절 말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은 이와 같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동시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아침해가 힘 있게 솟아오름 같이 돋아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간구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실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를 대적하며 살아가는 자는 지금 잠깐은 좋아 보여도 끝에 가서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위기 가운데서도 목숨을 보전 받고 끝내 충만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이 좋아야 진짜 좋은 인생입니다. 끝이 좋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고 어려운 형제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위안과 유익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형제 사랑과 복음 전파라는 사명을 버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감으로써 복된 결말, 좋은 끝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삶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