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4 사도행전 강해 (24) 제1차 선교여행 ‘비시디아 안디옥’ (사도행전 13장 42-52절)

성경에는 ‘안디옥’이란 이름의 도시가 2군데 등장합니다. 먼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 했던 안디옥 교회가 위치한 ‘수리아 지역에 속한 안디옥’이 있습니다. 통상 수리아 안디옥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여행 때 방문했던 ‘비시디아 지역에 속한 안디옥’이 있습니다. 이를 비시디아 안디옥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될 한 사람을 택하여 그를 메시아 즉 구원자로 세우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다윗의 자손 가운데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택한 사람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어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부활하였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이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이 날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메시아 곧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회당을 찾은 바울이 “이미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셨고, 그가 바로 예수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을 때 이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정말 예수라면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과 무덤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소식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가 끝나자 회당 분위기는 크게 요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바울이 말한 예수가 우리가 기다려온 메시아일까?’하는 질문에 서로 생각이 달라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예수의 소식에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이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만일 바울이 전해준 것처럼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를 믿고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아갔습니다. 이들은 진리에 대해서 목말라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예수가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이신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끝도 없는 질문들을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무심히 읽기보다는, 정말 이 안에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라면, 오늘 읽은 말씀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말씀을 삶 속에서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인류를 그들의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면, 그를 믿고 따라가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그 무엇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예수를 붙잡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고 가르치고 있는 성경 말씀이 참된 하나님의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로 퍼졌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처음 들어본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더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죽은 자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기괴한 이야기를 전하는 바울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한 주가 지나가고, 안식일이 되자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당을 찾았습니다. 바울은 또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3가지 모습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1. 복음을 부인하는 사람들

첫째는 복음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와 같이 성령이 충만하고, 탁월한 성경 가르침,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설교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런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여전히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유대인들 가운데는 바울을 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당에 모인 것을 보고 그를 질투하고 시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그의 부활하심을 전파할 때면 그 이야기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복음을 비웃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한 이야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 이야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가신 이야기 등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인간이 만들어 낸 전설이나 신화 같이 허구 속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서 어떤 이론이 진리로 받아 들여지기 위해서는 시험과 결과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얼음은 상온이 되면 녹는다’, ‘물은 100도씨가 넘어가면 끓는다’와 같이 시험을 하면 항상 같은 결과를 내는 것들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일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맹물로 포도주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물 위를 걸어간다는 것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기에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와 같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때문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난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들 뿐이라면,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아무나 되풀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기적과 같은 일들을 행하셨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입니다. 참 신기하죠? 똑같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비방하고 반박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경 말씀이 이해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예수의 복음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임을 인정하였다고 말했습니다. 46절 말씀을 봅시다.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즉 그가 내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과 그의 부활하심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고백한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복음을 부인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늘 본문 속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음이 줄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천국 밖에서 영원토록 이를 갈며 슬피 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울음은 억울함과 후회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 그 때 내가 들은 예수의 복음을 믿었어야 했는데!”하는 탄식입니다. 그러나 최후심판 이후에는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믿어야 합니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복음을 부인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하나님의 진리이기에 전파해야 합니다.

 

  1. 복음을 믿는 사람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두 번째 반응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4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반박하고 비방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48절 말씀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와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이고, 복음을 가장 안 믿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위치한 시골 동네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의 삶과 죽음이 도대체 이들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복음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도저히 복음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며 예수를 그의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이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없는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적입니다.

48절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 표현은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는 일은 사람의 내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외부의 절대자 즉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명하시고 영생을 얻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언뜻 보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예수를 믿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일 뒤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타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보면, 예수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찬송입니다. 이방인들은 자신들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또한 유대인이 아닌 자신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들도 모두 이방인들입니다. 본래 우리들은 복음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주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기를 기뻐하시고 태초 전에 이미 우리들이 영생을 얻도록 계획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주님을 기뻐하고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복음에는 전파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믿게 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49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오늘 한글 성경에는 해석되지 않고 빠진 헬라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홀레스’라는 단어인데 ‘모든’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시 해석하면 “주의 말씀이 그 지방 모든 곳에 두루 퍼지니라”입니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비시디아 안디옥 모든 지역을 다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그들이 속한 가정과 사회 또는 지역 커뮤니티에 돌아가서 자신들이 믿게 된 예수의 복음을 전하였음을 알려줍니다. 복음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 지역과 사마리아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전 세계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현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혼식 같은 잔치에서 샴페인 잔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놓은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맨 아래줄에 똑같이 생긴 샴페인 잔을 가로 7개, 세로 7개 총 49개를 놓습니다. 그 위에는 가로 6개, 세로 6개 이런 식으로 잔 위에 또 다른 잔을 피라미드 모양처럼 계속 쌓아 올라갑니다. 가장 꼭대기에는 하나의 잔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 하나의 잔에다가 샴페인을 천천히 따릅니다. 잔에 샴페인이 가득 차게 되면, 아래층에 놓인 잔에 샴페인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층에 잔들이 또 다시 가득 차게 되면 또 그 아래층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잔에 음료가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의 잔에서 시작된 흐름이 모든 잔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복음 전파도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될 때, 그는 예수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마치 바울과 바나바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전해준 복음은 이제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주변의 지인들과 이웃들에게 전파되어 갑니다. 우리들도 누군가가 들려준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서 끊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복음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갈 수 있도록 예수의 복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방인들은 예수와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가장 안 믿을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쁨과 찬송으로 반응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복음을 전달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복음도 누가 전하는가에 따라서 그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을 지나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면 부담이 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친한 사람들이거나, 내가 평소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면 한 번 즈음 진지하게 복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목회자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여러분이 오랜 시간 서로 알고 지낸 사람에게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까지 복음을 평균 7번 정도 들어야했다고 합니다. 한번 복음을 듣고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꾸준히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며,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마음이 열리는 경우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가 예수를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나,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곧바로 자신이 속한 지역 커뮤니티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어떤 특별한 훈련이나 프로그램을 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주일학교 어린아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려주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먼저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하십시오. 가족, 배우자, 부모, 형제, 자매, 자녀들부터 복음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친구들, 지인들,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부인하고 비방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0절 말씀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해다는 이유로 그 도시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전해준 복음을 듣고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2절을 봅시다.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은 비시다아 안디옥에서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복음을 비방하고, 복음을 전파한 전도자들을 내쫓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전도자들이 전해준 복음을 통해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여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여 새 삶을 살게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전파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