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 사도행전 강해 (23) ‘구브로 전도’ (사도행전 13장 4-12절)

 

안디옥 교회가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자, 성령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구별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일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했고, 드디어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구브로 섬으로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겉으로 볼 때는 안디옥 교회가 두 사람을 파송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직접 구브로 섬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지금도 우리 삶을 인도해 가고 계신다는 확신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성경을 한 번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성령 하나님은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품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찾아오셨고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코너스톤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안디옥 교회와 같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를 향한 열심을 가지고 기도에 힘쓰며 주를 섬길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코너스톤 교회를 안디옥 교회처럼 사용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진심으로 여러분 안에 그와 같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와 같은 소망을 가진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자신의 삶을 도전하십시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해서 똑같이 미지근한 신앙생활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새로운 차원의 믿음생활을 도전하십시오. 지금 우리 코너스톤 교회에도 기도의 훈련을 받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그와 같이 자신의 삶을 기도에 헌신할 때 비로소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여태까지 늘 해온 대로 믿음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해보지 않은 일들을 도전해 보십시오. 가장 먼저 기도의 삶을 도전해 보십시오. 기도에 힘쓰십시오. 아침의 10분을 주님께 기도로 헌신하십시오. 저녁의 10분을 주님께 기도로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하십시오. 또한 개인적으로 한 달 혹은 40일과 같이 기간을 정해 놓고 특별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한 달이란 생각으로 새벽예배를 도전해 보십시오. 와서 하나님을 열심으로 찾고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생활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의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십시오. 기도 없이 주님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모습은 그들이 매일 같이 성실하게 기도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지 않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또는 기도가 끝난 직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간증들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기도와 함께 시작됩니다.

지난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우리 교회는 PCA 한인중부노회를 호스팅했습니다. 미 중부지역에서 섬기시는 목사님들 예순 다섯 분 정도 노회 모임을 위해 저희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부엌에서 우리 여선교회 회원분들께서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지난 3일 동안 노회를 하면서 제 마음에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 여선교회 회원분들께서 부엌에서 일하시기 전에 아침에 동그랗게 서서 기도하시던 모습입니다. 저한태는 여러분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큰 감동으로 찾아왔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하기 전, 앞치마를 두르기 전 먼저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고요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사역을 기도로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 모든 봉사에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기를 초청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모든 봉사를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여선교회 성도님들의 귀한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크신 영광 받으신 줄 믿습니다.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다시 한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여선교회 회원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기도하는 자들과 함께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구브로 섬으로 선교를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구브로 섬에 도착한 바나바와 사울은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구브로 섬의 총책임자이자 총독인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서기오 바울’은 로마 원로원 의원의 선거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으로 따지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선거인단 538명 중 한 사람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서기오 바울은 로마 제국 내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현재 로마 황제의 명을 받고 이 구브로 섬에 총독으로 파견 받고 있는 것이죠. 자, 이와 같은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만일 서기오 바울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로마 제국 전체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은 더욱 수월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 총독 서기오 바울도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믿기 어려운 일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기오 바울도 도대체 이야기의 진상이 무엇인지,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했고,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더욱 자세히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을 소개하며 그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는 그가 생각이 깊고, 분별력이 뛰어나며,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복음의 진상을 자세히 파악하려고 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학자들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진리에 갈급 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갔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총독 서기오 방루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나, 그가 가진 지혜만으로는 이러한 궁극적인 질문들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자 바나바와 바울을 초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 누가 고리타분한 복음 이야기에 관심이 있겠는가?’하고 생각하며, 아마도 사람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총독 서기와 같이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인생의 참된 목적을 발견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 전파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총독 서기오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또 누구에게 복음을 듣겠습니까? 당시 로마 황제가 임명하여 식민지에 파송한 총독들은 일반 서민들이 아무 때나 쉽게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총독 서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자 직접 총독이 머물고 있는 관저로 저희를 불렀으니 이 얼마나 좋은 전도이 기회입니까?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에는 언제 그러하듯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 곁에는 ‘바예수’라 이름하는 왕실 마술사가 함께 있었습니다. ‘바예수’ 또는 ‘엘루마’라 이름하는 이 마술사는 총독 옆에 붙어 그의 미래를 점쳐주고, 강령술과 주술행위를 통해 그의 마음을 미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수많은 불신자들이 무당 찾아가서 점을 보고, 비싼 돈 주고 부적을 사서 마음에 불안을 해소하듯이, 총독 서기오도 마술사 바예수를 통해 그런 심리적 안정을 누렸을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 곁에 서 있던 바예수는 두 사람을 대적하여 총독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갖은 애를 썼습니다. 8절을 봅시다 “(13:8)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예수’라 하는 이 마술사는 계속해서 바나바와 사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복음을 비방했습니다. 바예수는 만일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되면, 그 동안 자신이 누려왔던 권세와 돈 줄이 끊어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기괴하고 허황된 진술이라고 주장하며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이 전파하는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일을 함에는 항상 반대 세력이 있습니다. 또한 악한 영의 공격이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악한 영들과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더욱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둠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칼로도 총으로도 어둠은 물리칠 수 없습니다. 어둠은 오직 빛으로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은 오직 진리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둠을 상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에는 우리의 힘과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 그리고 마술사 바예수 사이에 영적 전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마술사 바예수를 제압할 수 있도록 성령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울에게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울은 바예수를 강한 어조로 책망했습니다. 9-11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3: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3: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성령이 충만한 사울은 복음 전파를 가로 막는 바예수를 향해 그를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정의의 원수’라고 불렀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바로 거짓말과 비방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있는 바예수를 마귀의 자식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사울은 바예수가 복음 전도를 방해한 죄로 말미암아 그가 얼마 동안 시력을 상실하게 되어 소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즉시 하나님의 심판이 바예수를 덮었습니다. 그의 두 눈은 안개가 낀 것과 같이 뿌옇게 되었고, 그의 시력은 밤이 찾아온 것처럼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님이 된 바예수는 이리저리 더듬으며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바예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소경이 되어 허공을 더듬고 있는 애처로운 자신의 모습 속에서, 그 자신이야 말로 인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영적 소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 전파 사역을 방해하면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총독 서기오 바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사울의 한 마디에 마술사 바예수가 순식간에 시력을 잃고 소경이 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2절을 봅시다. “(13: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서기오 바울은 마술사 바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보며, 신적 존재의 능력으로 행해진 초자연적인 기적임을 확신했습니다. 이 사건을 본 후 서기오 바울은 그제서야 바나바와 사울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훗날 로마에 남아 있는 기독교인들의 묘지 비문을 보다가 ‘세르기아 파울리나’라는 여자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사람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딸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 말이 맞다면, 서기오 바울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건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고 그와 그의 온 가족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복음 전도, 아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스토리가 한 가정을 거듭난 그리스도인 가정이 되도록 변화시킨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 하는데, ‘바예수’ 같이 강력한 방해자가 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고난과 환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역을 다 내려놓고 포기하게끔 할 정도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속상한 마음에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것도 아니고 주님의 일하는데 이렇게 상황을 어렵게 하시면 어떻 합니까? 저는 마음이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아무런 방해가 없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신의 힘과 지혜만으로 이 모든 일을 성취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우리들의 교만함을 꺾으시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사역 가운데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며 ‘내 힘과 내 지혜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필요하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주님께서 하셨다!”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의 능력을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우리 마음을 겸손케 하십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방해자 바예수가 도리어 총독 서기오가 믿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처럼,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의 반전을 이루시기 위하여 때로는 고난도 핍박도 허락하십니다. 다만 그 은혜의 반전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며 그 모든 고난을 견뎌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섬길 때 반드시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욕하는 사람, 핍박하는 사람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난이 있다고 해서 쉽게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다. 오히려 그 고난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간다고 해서 다 꽃 길이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앞에 고난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정말이지 우리 삶에 고난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더 가깝게 만나게 됩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고난을 겪으며 우리 믿음이 성장했고,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며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나바와 사울의 복음 전도에서 박해자와 방해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사역 위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며,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이 다 잘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교회에 몇명이나 남겠습니까? 그나마 우리 삶에 문제가 있으니, 하나님 계속 붙잡고,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적당한 자극은 우리 믿음이 헤이해지는 것을 예방하고, 도리어 신앙생활의 적극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와 사울과 같이 열심으로 주를 섬기십시오. 자신의 삶을 세상 죄악으로부터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나님께 우리 삶을 드리기를 힘쓰십시오. 그 때 우리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때 고난과 핍박이 찾아와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환란과 핍박 중에 주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더욱 선명하게 주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복음을 들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전도 여행처럼 우리들도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주 예수의 복음을 들려주고 나눠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