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6 쓴 물을 단 물로 (출애굽기 15장 22-27절)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깊은 바다에 잠겨 죽은 애굽 군대를 보며 자신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즐거운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의 환희와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수르 광야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단단한 바위’를 뜻합니다. 수르 광야는 먼지만 날리고 태양을 피할 그늘 하나 없는 지역입니다. 사방에 메마른 돌 밖에 없는 거친 광야를 마실 물 하나 없이 무려 3일간 걸어갔습니다. 하루만 물을 못 마셔도 갈증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무더운 날씨 속에서 광야 길을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목이 마르고 심한 갈증을 느꼈을까요?

3일 뒤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라 이름하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에 물이 있었으나, 그곳의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마라’라는 단어 자체가 ‘쓰다’,’ 괴롭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지리학자들은 이 지역의 물은 소금기가 워낙 강해서 먹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난 3일 동안 무덥고 거친 돌 광야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3일 후 간신히 발견한 물은 짜다 못해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나이든 노인들도 있었을 터이고, 젊은 아이들과 갓난 아기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물을 마시지 못해 기진맥진한 백성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 하고 모세에게 따졌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원망하다’란 말은 ‘투덜거리다’, ‘웅성대다’란 뜻으로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무려 13번이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와 같은 원망과 불평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림으로써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발생합니다.

불과 3일 전만해도 홍해의 기적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만, 3일 동안 광야 길을 걸어간 그들의 눈 앞에는 홍해를 가르신 위대하신 하나님은 온데 간데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은 이제 불평과 원망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쁜 일, 좋은 일 하나 생기면 ‘역시 우리 하나님 최고’하고 외치며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다 가도, 어려운 일, 힘든 일 하나 찾아오면 앞서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다 까먹고, ‘하나님이 정말 날 사랑하시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시나?’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흔들리는 믿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삶의 상황이 변화해도, 흔들리지 않고 요동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의 은혜를 묵상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속상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도리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는 많은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3일 동안 광야 길을 걸어온 모세는 이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세라고 왜 목이 안 말랐겠습니까? 이 때 모세는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모세라고 왜 안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이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 모세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인생의 쓴맛을 맛볼 때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인생에 고통이 찾아올 때, 삶에 어려움이 일어날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은 어려울 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숙한 자는 어려울 때 기도합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믿음의 사람들은 평상시보다 고난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가깝게 만납니다. 혹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삶이 메마르고 거친 ‘수르 광야’를 지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내 인생이 쓰디쓴 ‘마라’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 분은 없습니까? 모세와 같이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그 부르짖음에 대한 결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사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문제들을 푸는 방법과 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죠.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 비로소 주님은 그 분이 가진 지혜와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가 주님을 찾자 그제서야 그에게 문제를 해결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하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또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주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떤 나무를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나무를 마라의 쓴 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마라’에서 모세가 던진 나무가 아마도 ‘대추야자 나무’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마라’라고 추정되는 지역은 대추야자 나무가 울창한 곳이며, 이 나무에는 염수를 담수로 바꾸는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대추야자 나무를 던져서 쓴물이 단물로 변화했든지, 아니면 아무런 효능도 없는 나무를 던져서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염수를 담수로 변화시키신 것인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은 2백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묘막측하신 분이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예상과 방법을 초월한 지혜와 능력으로 주님은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주님은 손쉽게 해결하십니다. 그 누가 홍해가 갈라지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누가 쓴 물이 나무 하나 던진다고 단물로 변화할 것이라고 알았겠습니까?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방법이 없어 보여도,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도와주십니다.

25-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출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마라의 기적이 일어난 후 하나님께서는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습니다. 시내산에 도착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받기 전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법도와 규례를 지켜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다양한 시련과 어려움 겪는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신뢰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며, 그들을 겸손하게 낮추기 위한 시험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을 통과한 백성들에게 약속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26절에서 약속하신 바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이 하나도 그들 위에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병’은 애굽 사람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져준 열 가지 재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질병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로 소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고된 광야 길을 지나가야 하고 마라의 쓴 물과 같이 인생의 쓴맛을 봐야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치료하시고 고치실 것이란 약속입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출 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앞서 수르 광야, 마라를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으로 입이 쭈욱 삐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가 나왔습니다. 성경지리학자들은 마라에서 엘림이 불과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 도착했을 때 10km만 더 걸어가면 엘림이라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엘림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또한 조금만 더 가면 물이 넘치는 엘림이 나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모세와 하나님 앞에서 투덜거리며 불평했으니, 하나님을 원망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고난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또한 시험 당하는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다. 엘림이 멀지 않습니다. 이제 조금 더 버티면 엘림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님을 더욱 신뢰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쓰디 쓴 인생의 마라를 만나진 않으셨습니까? 버티기 힘든 수르 광야를 지나고 계시진 않습니까?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더욱 붙드십시오. 우리가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할 때 치료와 회복의 역사는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