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7 절망의 수렁에서 울려 퍼진 찬양 (시편 69편 19~36절)


 

다윗의 원수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를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까닭 없이 자신을 비방하고 모욕하며 죽이려 하는 모든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9절을 봅시다. “(시 69:19)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여기서 ‘훼방’, ‘수치’, ‘능욕’은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그에게 어떤 수치와 모욕과 불명예를 안겨주었는지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19절에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괴롭히는 대적자들이 누구인지 다 알고 계심을 가리킵니다.

20절을 봅시다. “(시 69:20)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여기서 훼방은 원수들의 조롱과 모욕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그의 마음에 근심을 가득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다친 마음은 아물 줄을 몰랐습니다. 이에 다윗은 동정 받고자 했으나 아무도 없었고, 위로 해 줄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소외 당하는 어려움에 처하였던 것이죠.

21절을 봅시다. “(시 69: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여기서 쓸개는 먹지 못할 만큼 강한 쓴 맛을 내는 음식을, 식초는 시큼하고 강한 신맛을 내는 음료를 가리킵니다. 도무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쓴맛과 신맛을 가진 음식과 음료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진짜 이런 먹을 것을 주었다는 말이 아니라 비유입니다. 너무나도 쓴 쓸개를 음식으로 주었다는 것은 다윗이 그만큼 원수들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목마를 때 저들이 식초를 그에게 주었다는 것은, 다윗을 멸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초’는 ‘상한 술’ 혹은 ‘매우 저급한 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상품 가치가 없기에 주로 노예나 비천한 신분을 가진 자들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다윗에게 주었으니 다윗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시편 69편 21절 말씀은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먼 훗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 구절이 인용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은 “내가 목 마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죽어가며 갈급함을 호소하셨던 예수님께 로마 군병들은 그에게 수치와 조롱을 더하기 위해서 ‘쓸개를 탄 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 19장 29절에서는 ‘신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합쳐서 보면, 로마 병사들은 쓸개와 신 포도주, 즉 저급하고 상해버려 신맛이 나는 술이 섞인 음료를 예수님께 드림으로써 오늘 본문 21절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 다윗의 탄식시입니다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시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자, 이제 22절부터 28절까지 원수들을 심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다윗의 호소가 이어집니다. 22절 “하나님, 원수들의 앞에 차려진 잔칫상이 도리어 그들이 넘어질 덫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들이 누리는 평화가 도리어 저들이 빠져드는 함정이 되게 하소서.” 23절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못 보게 해 주세요. 그들의 등이 여원히 굽게 해주세요.” 24절 “주님의 불붙는 분노를 저들에게 쏟아주세요.” 25절 “저들의 집이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들이 머무는 천막에는 아무도 살지 못하게 해 주세요.” 27절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하나도 빠짐없이 벌하셔서, 저들이 죄가 용서받지 못하게 해주세요.” 28절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시고, 의로운 사람의 명부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다윗은 이와 같이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이어서 29절을 봅시다. “(시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경제적 물질적 궁핍함을 의미도 있습니다만, 또한 ‘고통 받는’, ‘억압 받는’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큰 고통을 받아 마음이 괴롭게 슬프니 하나님께서 그를 반드시 구원해주시고 높여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원수들의 비방과 공격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죽어가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 원수들을 반드시 철저하게 심판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30절부터는 시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30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한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내려진 복락에 대해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30절을 봅시다.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조금 전까지 29절에서 “나는 괴롭다. 슬프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던 다윗이 30절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는 것은 어색한 전개가 결코 아닙니다. 다윗은 29절까지의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이란 분명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신뢰하며 드리는 감사의 찬양이야말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최고의 제사요 제물이라고 말합니다. 31절을 봅시다. “(시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황소’는 제사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비싸고 귀한 제물입니다. 워낙 가격도 높고 귀해서 일반 서민들은 하나님께 평상시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황소를 제물로 드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교적 값싼 비둘기로 황소를 대체해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실하게 신뢰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삶이야말로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최상의 제물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그에 따른 감사와 찬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하나님께 비싼 황소를 잡아 제사 드리지 못한다고 낙심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최상의 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 소리를 외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33절을 봅시다. “(시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주님은 가난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므로, 갇혀 있는 사람들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의 시는 고통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비록 상황과 환경은 어려워도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절망의 수렁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신뢰하고 감사의 찬양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삶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