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1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라 (시편 66편 1~9절)

 

 

오늘 본문의 시인은 찬양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발할지어다” ‘온 땅’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운 소리를 외치라고 말합니다. 즐거운 소리가 무엇일까요? 환호성입니다. 미식축구 선수들이 터치다운을 하면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크게 기뻐하며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까? 바로 그 소리가 ‘즐거운 소리’입니다.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그와 같은 승리의 기쁜 소리를 외치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 감정이 충만하고 넘치면 몸 밖으로 표현됩니다. 슬픔이 넘치면 눈물이 되어서 나오고, 기쁨이 넘치면 환호성이 나오는 것이죠.

복권을 샀는데 1등 당첨이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 가만히 있겠습니까? 온 집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까? 희열이 가득하면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자, 그렇다면 언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즐거운 소리를 나타내었습니까? 꼭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즐거운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지금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 베푸신 은혜들을 떠올리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지금도 하나님을 향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주신 하나님, 자녀를 주신 하나님, 가정을 지켜 주신 하나님,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 등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여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기뻐하는 소리를 외치십시오.

2절을 봅시다. “(시 66:2)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세상에 수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주 “예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되뇌이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즉 주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운 일들을 떠올리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시인은 3절에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엄위’라는 단어가 3절, 5절 두 번 나옵니다. ‘엄위’라는 말은 ‘놀랍다’,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이 어찌 그리 놀랍고 위대한지요!”하고 주님을 찬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은혜를 떠올려 보면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시고, 주의 일꾼으로 선택해주시고, 주와 함께 살아가게 하시고, 주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시는 일 등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주님의 크신 권능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반항했던 원수들도 결국에는 주님께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1절에서 “온 땅이여…”하고 말했던 시인은 다시 한번 4절에서 “온 땅이 주를 경배하고”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대하고 있는 대상이 모든 민족, 모든 나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세상 만민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해 경배하고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5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5절을 봅시다. “(시 66:5)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5절을 보면 “와서 보라”라는 초대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린 초대입니다. 와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베푸신 은혜가 엄위합니다. 아까 ‘엄위’ 뜻 이야기했죠? ‘놀랍다’, ‘위대하다’는 의미를 가진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일은 실로 놀랍고 위대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시인이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랍고 위대하신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6절입니다. “(시 66:6)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여기서 시인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출애굽 때의 홍해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반으로 가르시고 바다가 변하여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두 다리로 걸어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또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 원수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빠져 전멸하게 됩니다. 시인은 이 홍해 사건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위대하신 권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기에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7절입니다. “(시 66:7)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셀라)”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살펴보고 계시며, 반역하는 무리들,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사실 역시 시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악인들과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겸손한 주의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자, 이제 시인은 다시 한번 세계 모든 민족들을 찬양으로 초대합니다. 8절을 봅시다. “(시 66: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 시인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되, 작은 소리가 아니라 큰 소리로 노래하며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큰 소리로 찬양할 이유를 9절에 이야기합니다. “(시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영혼을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다시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죠. 또 9절을 보면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실족하다’는 것은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실족한다는 것은 ‘망한다’란 의미와 ‘좌절하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좌절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놀랍고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이 좋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운 소리로 외치며,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