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9 제자의 귀, 학자의 혀 (이사야 50장 4절 ~ 51장 8절)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에 축복이 찾아오지만,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축복 중 하나가 바로 ‘만남의 축복’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과 자신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의 길을 가르치시고, 여호와의 종은 그 말씀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곤고함에 처한 자들을 어떻게 도와줄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4절 말씀을 봅시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하나님은 주의 종에게 학자와 같은 혀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학자’란 어떤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곤핍한 자, 인생의 괴로움에 처한 자들을 말로 위로한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르는 분들 앞에 서면 입을 열기가 어렵습니다. 저 딴에는 위로의 말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지만, 도리어 얕은 위로의 말이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통해 주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이 언제 일어납니까? 4절 중반을 보십시오.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왜 아침일까요?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요하고 잔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아침마다”라고 했으니 매일 아침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아침마다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가장 가까운 배우자도, 자녀들도 잠시 방해하지 않도록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오직 나와 하나님이 1대1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읽고, 밑줄을 긋고, 묵상하고 또 묵상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는 것이 주님께 배우는 자의 삶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키고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 등 세상 이야기를 가장 먼저 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침만큼 주님과 독대하기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본문 속 여호와의 종이 아침마다 주님께 배움을 받고 자신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놓은 것과 같이,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께 배우고, 그의 가르침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자 이제 그는 원수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5-6절을 봅시다. “(사 50: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사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분명히 주님의 종이 가는 길을 막고 그를 괴롭히고 못살게 핍박하는 원수들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얼마나 낙심이 크고 좌절되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끝까지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는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때리는 원수들에게 등을 대 줍니다. 수염을 뽑는 사람들에게 뺨을 대 줍니다. 조롱하고 침을 뱉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봅시다. “(사 5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께서 그를 돕고 계시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9절에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의 종을 도우시기 때문에 오히려 그와 다투는 자들, 그의 대적들, 그를 정죄하는 자들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입니다. 사탄과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고 공격으로 인해 아픔과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돌보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핍박으로 인해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길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권면합니다. 한 가지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길입니다. 10절을 봅시다. “(사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삶에 아무런 소망이 없어 캄캄한 흑암 중에 다니는 자 같을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반드시 그를 도와주십니다. 또 하나의 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여호와의 종들을 핍박하는 세상의 길입니다. 11절을 보면 불을 피우고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여호와의 종을 핍박하기 위해 모의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의 편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11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여기서 슬픔은 고통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여호와의 종의 원수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남는 것은 슬픔과 고통 뿐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생활하고 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51장 1절을 봅시다. “(사 51: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처음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시작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던 75세 노인 아브라함과 아이를 낳지 못하던 그의 아내 사라였습니다. 이 힘 없고 보잘 것 없는 한 부부가 이스라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사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어 수많은 자녀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욥기의 말씀처럼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성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죠.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첫 역사를 상기시키시며, 비록 지금 이스라엘이 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절을 봅시다. “(사 51: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땅을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광야 같이 황폐한 곳이 에덴 같아지고, 사막 같이 변해버린 땅이 여호와의 동산 같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양의 큰 소리들이 차고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주님의 공의도 폐하여지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영원토록 복이 있습니다. 오늘 이 하루도 우리의 아버지이시자, 스승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님의 뜻과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