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8 손바닥에 새긴 사랑 (이사야 49장 14절 ~ 50장 3절)


 

바벨론에게 나라가 멸망하고 전쟁의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겨운 조롱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이 비극과도 같은 현실에서 구원해 달라고 소리쳐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만 같이 느껴졌고, 그들에게는 하늘이 닫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여 버리고, 우상을 택한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은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도 깨닫지 못한 채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이와 같이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크게 실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습니까?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나타난 대목입니다. 자식이 나쁜 길로 가면 옳은 길로 돌아오도록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 부모입니다. 부모가 매를 들고 때린다고 해서 자녀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때리는 부모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향해 드는 매는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죄악 된 길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들을 좇아 갔기에 주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그들이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잠깐 넘기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실상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잊으시지 않았고, 버리신 적이 없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도 고난은 찾아옵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눈물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고통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는 증거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찾아온 아픔과 눈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계시며, 우리를 한 시도 잊지 않으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사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찌나 사랑하시는지요,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며,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부모가 어찌 그 자식을 잊겠습니까? 혹 사람은 자기가 낳은 자녀를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16절에서 하나님께서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벽’은 예루살렘 성을 의미합니다. 이 당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불타 완전히 파괴되고 황폐한 채로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했다고 슬퍼했고,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을 잊어버리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이 항상 주님의 관심사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삶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다시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사 49: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바벨론이 너무나도 막강한 터라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원토록 바벨론의 노예로 살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속히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바로 그 약속의 땅으로 속히 돌아올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성으로 속히 귀환할 것이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원수 바벨론은 파멸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봅시다. “(사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사 49: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바벨론의 공격과 방화로 인해 지금 이스라엘 땅은 황폐합니다. 그러나 이제 흩어진 주의 자녀들이 다시 이스라엘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19절 말씀처럼 황폐하고 파멸을 당했던 땅에 거주민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게 될 것인지 거주지가 모자를 정도입니다. 20절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사 49:20)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한번 번영하도록 회복하시고 부흥시키실 것을 약속하시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회복되고 부흥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삼켰던 자들 곧 원수 바벨론은 멸망될 것입니다.

18절 중반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한 번 주목해 보십시오.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 그리고 부흥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바벨론의 멸망까지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셨는데, 누가 감히 이 일을 막겠습니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구원의 약속이 성취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일어난 구원과 회복의 역사로 인하여 기뻐하며 놀랄 것입니다. 21절을 봅시다. “(사 49: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이스라엘이 이전에 누리던 영광을 다시 회복하게 됨에 따라 놀라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바벨론의 칼에 멸망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다시 회복하게 되었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스라엘을 뜨겁게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성도들이 누리게 될 복이 바로 이 구원과 회복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 우리의 모든 삶을 돌아보며, “아니 어떻게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부족함이 많은 연약한 사람인데 내가 어찌 이렇게 큰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행복하게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이름을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 끝없는 사랑을 받은 여러분, 이제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며, 우리들도 날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