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9 참된 지혜 (야고보서 3장 13-18절)

 

한국에 가면 식당 이름 앞에 ‘원조’라고 붙어 있는 가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원조 돈까스’, ‘원조 떡볶이’, ‘원조 칼국수’, ‘원조 순대국’ 등등 이름 앞에 원조가 들어가는 가게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 앞에 ‘원조’를 붙이는 것일까요? 하나의 식당이 잘되고 유명해지면, 똑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맨 처음 자리를 잡은 식당 주인이 “우리가 진짜다!”하는 것을 어필하고자 가게 이름 앞에 ‘원조’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너도나도 가게 이름 앞에 원조를 붙여 놓다 보니, 이제는 누가 진짜 원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신당동 가서 떡볶이를 하나 사 먹으려고 해도 집집 마다 원조라고 써 있고, 춘천 가서 닭갈비를 사 먹으려고 해도 가게 마다 원조라고 써 있습니다. 음식이야 어느 가게가 원조이든지 손님 입장에서는 맛있게만 먹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은 다릅니다. 진짜와 가짜를 잘 가려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조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가짜 신앙은 우리 영혼을 파멸시킬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중 참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주 금요일에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인생 가운데 찾아온 시험 가운데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는가?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가? 주를 의지하며 인내하는가? 이와 같이 시험을 통과하는 태도와 자세를 통해서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이 진실한지 아니면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으로 참된 지혜와 거짓된 지혜를 구별하는 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지혜도 참 지혜가 있고, 거짓 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참 지혜를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지혜란 뜻입니다. 반대로 거짓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라고 부릅니다. 마귀가 준 지혜요, 정욕에서 우러나온 지혜입니다. 참 지혜와 거짓 지혜는 각각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배우고 익힘으로써,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가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야고보가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진심으로 좋은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자 했습니다. 잘못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지혜를 뽐내려 하는 자들 곧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미숙한 사람들을 향하여 야고보는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참된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고보는 참된 지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단순히 말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요소들이 나타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통해 지혜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1. 참 지혜의 특징: 온유함과 선행
그렇다면 위에서부터 온 지혜,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은 무엇입니까? 바로 온유함과 선행입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야고보는 말만 잘 하는 사람들,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사람을 가리켜 지혜 있는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특별한 성경 지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말로만 선전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야고보는 참되고 위로부터 온 지혜는 온유함과 선행을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지혜인지 아니면, 세상적인 지혜인지 분별하는 방법은 이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온유함과 외적인 선행을 갖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함과 선행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혜는 내면의 온유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는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헐뜯거나 공격하거나 넘어뜨리기 위한 미움이 없습니다. 도리어 남을 위해 나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또 헌신하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13절에 사용된 단어 ‘지혜의 온유함’이란 표현을 이해하기 쉽게 바꾸어 말하면, ‘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겸손한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참된 지혜의 특징은 겸손합니다. 자신이 성경을 얼마만큼 잘 아는지 뽐내고 자랑하기 위하여 말씀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이미 그가 가진 지혜가 세상의 정욕으로부터 왔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는 남들 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뽐내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미련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말씀을 배우고 익힙니다. 이와 같이 겸손한 태도가 바로 온유입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자라면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순응하고자 하는 온유함이 머물고 있습니다.
참 지혜를 가진 자의 삶에서 나타나야 하는 두번째 특징은 선행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도록 격려합니다. 머리 속에 머무는 관념으로서의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손과 발로 행하는 말씀이 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머리 속에서 지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돌보며, 연약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며 살아갑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인도 선교사로 떠난 젊은이를 보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 저 좋은 학벌을 갖고 굳이 어려운 환경으로 떠나는 것일까?’, ‘큰 회사에 들어가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을 포기하고 저 고생길을 굳이 걸어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희생하며 살아갈까?’ 궁금해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그렇게 선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들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며 살아가도록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삶 속에서 드러나는 선행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지혜가 참된 지혜임을 증거합니다. 야고보는 말로만 자신의 성경 지식을 뽐내며 자랑하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내면의 온유함과 외적인 선행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것들이 없으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온유함과 선한 행실이 드러나는 사람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가진 지혜는 참 지혜입니까? 아니면 거짓 지혜입니까? 지혜에 합당한 마음인 온유함이 있습니까? 지혜에 합당한 실천인 선행이 있습니까? 참된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듯이, 참된 지혜는 내적인 온유함과 외적인 선행으로 드러납니다.
2. 거짓 지혜의 특징: 요란함과 악행
자, 그렇다면 참된 지혜와 대비되는 거짓 지혜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요? 거짓 지혜는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참된 지혜에서 나타나는 ‘온유’와 ‘선행’의 정반대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함과 대비되는 ‘요란함’, 선행과 대비되는 ‘악한 일’입니다. 거짓 지혜의 특징은 요란함과 악한 일입니다. 14-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약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약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일단 말씀만 봐도 정욕에서부터 만들어진 거짓 지혜, 세상적인 지혜가 우리 삶과 공동체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게 되는지 대략 감이 옵니다. 거짓 지혜가 가진 두 가지 특징인 요란함과 악한 일을 살펴봅시다.
거짓 지혜가 가진 첫 번째 특징은 ‘요란함’입니다. 이것은 참 지혜가 가진 특징인 온유함과 반대되는 특징입니다. 온유함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를 의미했다면, 요란함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내면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또한 요란함이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을 고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왔다 갔다 흔들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살아가는 마음의 동기가 정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쑥불쑥 떠오르는 감정과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러한 지혜에 대하여 15절 말씀에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이라고 한 이유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지혜가 쉽게 변화하고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욕적이라고 한 이유는 육체의 정욕에 굴복하여 감각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마귀적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러한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지혜를 조장하는 배후 세력인 마귀에게 미혹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거짓 지혜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살아가고,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거짓 지혜가 가진 두 번째 특징은 ‘악행’입니다. 참된 지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인 ‘선행’과 반대되는 특징입니다. 참된 지혜는 섬김과 희생을 강조합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누가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집중하지 않고, 각 사람들이 가진 힘을 어느 방향으로 사용 하느냐에 집중합니다. 문제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크든 작든, 내 소유가 많든 적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덕을 세우고 공동체의 유익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짓 지혜는 추구하는 가치가 다릅니다.
그러나 거짓 지혜는 결국 개인의 유익과 만족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동을 합니다. 거짓 지혜는 힘의 논리로 다스리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또한 중심에 서기 위해서 힘을 겨루고 다투고 싸웁니다. 이처럼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세상에 대한 탐심과 육체의 정욕에 휩쓸려 살아가는 요란함과 악행이 가지고 오는 결과가 곧 시기와 다툼입니다. 이들은 타인을 미워하고 공동체 안에서 소란과 갈등을 일으키고, 분열을 가져옵니다. 거짓 지혜는 개인의 유익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결국에는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3. 참된 지혜의 열매: 화평과 의의 열매
자, 그렇다면 참된 지혜, 위로부터 오는 지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지혜는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약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마치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같이 야고보는 17절에 참된 지혜가 갖고 있는 8가지 특징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만, 이 중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화평’입니다. 참된 지혜는 공동체의 평화를 추구하며,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즉 교회를 하나되게 만드는 것이 참된 지혜의 열매입니다. 이따금씩 교회가 분열하고 다투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땅에서 난 지혜이지, 결코 위로부터 난 지혜는 아닙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케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이웃들과 화평하게 지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8절에서 말하는 의로운 열매는 곧 ‘삶으로 나타나는 의로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는 사람으로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하고, 선행을 통해 이웃과도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 결과 위로부터 온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지혜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혜는 온유함 즉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면의 지혜는 겉으로 드러나는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에 나타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된 지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가 탐심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세상적인 지혜가 아니어야 합니다. 겸손함과 선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는 참된 지혜가 머무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