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6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 (잠언 29장 15-27절)


어린 자녀들 가운데는 말로 타일로도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이 센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예의가 없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자녀를 훈육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놔두면 자녀는 더욱 더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 훗날 그 자녀는 자신의 부모에게까지 수치를 끼치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15절 말씀에 사용된 ‘욕되게 하느니라’는 말은 자신의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가문에 큰 수치를 안겨준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가정 전체가 파멸에 이르는 심각한 결과가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잘못된 길로 갈 때 적극적으로 징계하고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가르쳐주면 어린 자녀들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징계하고 훈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 자녀들을 잘 가르쳐 놓으면 커서도 올바른 길로 성장하여 부모에게도 기쁨을 주는 존재로 자라납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이따금씩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마르지 아니한 시멘트라고 비유합니다. 시멘트가 딱딱하기 굳기 전에 발자국을 하나 찍어 놓으면 나중에 시멘트가 다 마르면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이 되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말랑말랑한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부모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올바른 삶의 자세와 태도가 찍혀지도록 교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릴 때 자녀를 무심히 방치해두면 훗날 부모는 후회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신앙으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잠 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접족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균에 옮게 되듯이, 악한 자들이 많아지고 세력을 장악하게 되면 더 많은 죄악이 사회에 퍼지게 됩니다. 조폭이나 건달들이 득세하게 되면 한 도시 전체가 죄악으로 물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악의 세력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난한 자들,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이웃들로 하여금 큰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합니다. 정원을 보면 아름다운 꽃보다도 잡초가 더 잘 자라납니다. 키우려는 꽃은 쉽게 말라 죽는데, 잡초는 생명력이 질깁니다. 가라지가 곡식보다 빨리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잡초가 생명력이 질기고 가라지가 곡식보다 빨리 자랄찌라도, 잡초는 끝까지 잡초이고 가라지는 끝까지 가라지 입니다. 때가 되면 잡초는 관리지기에게 가라지는 농부 아저씨의 손에 뿌리까지 뽑힐 날이 반드시 옵니다. 농부는 가라지를 땔깜으로 쓰기 위해서 아궁이 불에 집어넣습니다. 마찬가지로 악인이 잠시 잠깐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뿌리 뽑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여기서 묵시란 구약 시대 때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꿈’이나 ‘환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셨고,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수차례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본문에 사용된 ‘묵시’는 단순히 ‘꿈’과 ‘환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가운데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과 명령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18절은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백성들이 자기 멋대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탐심이 이끄는 대로 마구잡이식으로 살아갑니다.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머리를 풀어헤쳐 놓은 상태로 불어 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규범이 되고 살아가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탐심에 따라 순간순간 감정과 느낌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마구잡이로 날아가는 머리처럼 멋대로 날뛰며 살아간다는 것이죠. 이런 경우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없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 자유로울 것 같고 신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스포츠 경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제약이 있고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규칙이 없고 룰이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제한적 자유는 오히려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동성과의 결혼을 선택하는 자유, 낙태를 하는 자유가 인간에게 유익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해지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은 거만한 사람들을 대적하십니다. 그들을 망하게 하시고, 그들을 낮추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의 마음이 겸손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미련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오직 여호와 한 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삶과 명예로운 인생을 복으로 주십니다. 교만은 어떠한 모습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25-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끄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무엇인간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25절에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반드시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나, 사회조직에서 나보다 높은 권력의 위치에서 앉아 휘두르는 칼을 지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한 마디에 직장을 잃을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까 사람들은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의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전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사람에게 잘 보인다고 해서 일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26절 말씀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게 잘 보이려고 해도, 결국 사람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모두 다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사람을 의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까요? 지혜는 단순하고 정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