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나요? 처음에는 “안돼. 하지마.”하고 말로 타이릅니다. 아이가 계속 어머니 말 안 들으면 책망하는 어조를 바꿔서 강한 경고를 줍니다. 만일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고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어머니는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벌을 주거나 매를 들어서 아이를 엄하게 훈육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는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처음에는 경고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혹은 상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죄악을 버리지 않는 목이 곧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에 깁스를 하고 있는 것처럼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통해서 죄악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하지 말라고 말로 책망하고 경고할 때 그만 둘 줄 아이가 지혜롭고 성숙한 아이이듯이, 하나님께서 사람과 상황을 통해 책망하실 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이 지혜롭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2절을 봅시다. “(잠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백성 전체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악한 지도자가 권세를 잡게 되면 백성들 모두가 탄식에 빠지게 됩니다. 돈 없고, 힘없는 약한 자들은 무시당하고, 차별 받고, 소외 받는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지만, 뇌물을 좋아하는 왕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과 방법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나라가 튼튼하게 세워져 갑니다. 그러나 뇌물 받기를 좋아하고 금품과 향락을 즐기는 악한 자가 왕이 되면 나라 전체가 망하게 됩니다. 이는 가정과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공의로 가정을 세워나가게 되면, 가정이 튼튼하고 안정되어 가겠으나, 가장이 돈과 재물을 좇아 살아가게 되면 가정 전체가 영적으로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됩니다. 한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교회를 운영해 나가면 교회는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영적인 부흥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속적인 탐심과 재물을 바라보며 교회를 운영한다면 교회 전체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불의와 거짓이 없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가정과 교회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입니다. “(잠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지혜를 사모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큰 기쁨이고 자랑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매일 같이 창녀에게 드나들며 재산을 탕진한다면 아버지의 근심이고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창기는 육체적 정욕을 상징하며 동시에 세상적인 죄악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 오락거리와 육체적 즐거움만 찾아 살아간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근심케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즐겁게 합니다.
5-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잠 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잠 29:6)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이웃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뇌물이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필경 자기 스스로 파 놓은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자기 발레 걸릴 그물을 스스로 놓는 것과 같이 어리석습니다. 악인이 거짓과 속임수로 죄를 범하면서까지 번영하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결국에는 자신이 저지른 악으로 인해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의인은 어떻습니까? 죄가 없기에 당당합니다. 거룩함 지키며 살아가는 의인은 언제나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고 즐거워합니다. 재물이 많으나 염려하고 번뇌하는 삶보다, 재물이 적으나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곧 그물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8-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8)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8절에 모만한 자는 ‘거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거만한 사람은 쉽게 분노하고 화를 내며 사람들과 다툽니다. 거만한 사람이 있는 곳은 말싸움, 몸싸움으로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이 화를 내도, 온유한 말과 부드러운 성품으로 상대방의 분노를 가라앉게 합니다. 그 결과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 곳에는 화평과 평강이 머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 것이죠. 화를 내며 분노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루지 못합니다. 화를 절제하고 분노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쉽게 분을 내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련한 자들과의 다툼은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0절 말씀처럼 ‘남을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어리석은 자와의 아무런 유익도 없는 미련한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13-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잠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가난한 사람이나 그를 착취하는 악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햇빛이 비취고,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 모두에게 하늘에서는 비가 내립니다. 즉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임의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자들도, 악을 행하는 불의한 자들도 결국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그 이면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세상의 불의와 악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가난하고 힘 없고 연약한 우리 이웃들을 보살피고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열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복을 주시고 우리 삶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단단한 반석 위에 선 것처럼 견고하게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