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이 서툰 사람은 브레이크를 자주 밟습니다. 그러한 습관이 함께 차를 타고 있는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화가 서툰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자주 끊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 13절을 보면 “(잠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급하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조급하게 말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끊지 말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예의’이고 ‘배려’입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압니다. 13절을 보면 상대방의 사연을 다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욕을 당한다’는 말은 ‘가치가 없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대화할 때마다 내 말을 끊는 사람하고 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결국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하기만 급해서 상대방의 끊고 끝까지 듣지도 못하는 사람은 경박한 자로 여김 받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인내하고 들어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잠 18:14)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사람의 마음은 육체의 병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병이 들었을 때 마음까지 무너지면 환자의 삶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약하여 무너진 심령은 그 누구도 일으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을 중요하지만, 정작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건강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운동을 통해서 몸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심령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령을 강하게 하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양질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연 속에 들어가 쉼을 갖는 것,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양질의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운동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는 것처럼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육체는 아무리 운동하고 잘 관리해도 시간이 지나면 고장이 나고, 힘이 빠지기 마련입니다. 자연의 순리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심령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작은 깨달음도 우리가 사는 삶 전체를 바꿀만큼 큰 힘이 있습니다. 심령의 상태가 연약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말씀을 보니 “명철한 자는 마음의 지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시 해석하면 “명철한 사람은 마음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지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깊게 묵상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서 몸부림 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살아가기에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합니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해석하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귀는 지식을 듣기 위해 열려 있고, 그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그가 가진 지혜는 확장되고 깊어집니다. 모든지 한 두 번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명철한 자의 특징은 부지런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와 같이 매일 주님의 말씀을 향해 달려가는 명철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판결하는 재판관이 원고 한 사람의 말만 들어보고 판결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피고의 입장도 들어봐야 합니다. 17절 말씀은 원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피고가 분명히 잘못했고 원고가 억울한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피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야기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재판이나 소송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한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쪽 사람은 매우 나쁜 사람이고 못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쪽 사람의 이야기를 또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라 사실은 처음 이야기 한 사람이 오해를 했거나, 이야기를 와전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은 13절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양쪽의 사연을 다 듣기 전에 상황에 대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양쪽의 입장과 견해를 자세하게 살펴서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가 취해야할 태도입니다.
20-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는 잠언이 우리의 언어생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지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것을 주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통해 그의 생각과 감정 때로는 동기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잘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열매를 통해서 복을 누릴 수도 있고, 반대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선한 말을 하는 자는 그 말을 통해 좋은 열매를 먹을 것이지만, 악한 말을 하는 자는 그 불필요하고 그릇된 말을 통해 결국 자신이 곤경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조급하게 말하지 아니하고,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는 기쁨이요, 이웃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