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악인은 의인 앞에 엎드러진다 (잠언 14장 1-19절)


잠언 14장 1절에 나오는 ‘지혜로운 여인’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여인을 가리킵니다. 그녀는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여러가지 일들에 충실합니다. 또한 가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운영합니다. 남편을 존경하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가족들을 섬기며 사랑합니다. 이와 같은 지혜로운 여인의 삶으로 인하여 그녀의 가정은 흥하게 됩니다. 반대로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가정을 꾸리는 일에 불성실하고, 가족 간에 불화를 조성합니다. 결국 미련한 여인은 스스로 집을 허물게 됩니다. 미련한 여인도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려고 노력은 하겠으나, 하나님이 없는 미련한 여인의 생활은 곧 스스로에게 화를 불러 일으키는 비극을 가져다 줍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의 흥망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유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크고 중대한 일에만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 일상적인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잘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가정을 꾸리는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에도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가정을 세우는 자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의 탐욕으로 가정을 허무는 자입니까? 하나님께 우리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시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2절을 봅시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고, 패역하게 행하는 자 즉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자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정직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자는 정직한 길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거짓과 속임수를 행하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간의 도리를 저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거짓과 속임수를 행하는 자들은 결국 세상의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은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타인을 속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직입니다. 성도의 정직한 삶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우리 인생을 살아갈 때, 거짓과 속임수의 행위를 버리고 정직하게 살 수 있습니다.
4절을 봅시다. “(잠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먹을 거 주고, 소 똥 치우는 일 등 소 주인이 할 일이 많습니다. 소가 없으면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소가 있음으로 인해 얻는 유익이 더 큽니다. 소는 사람의 힘으로 갈 수 없는 논밭도 척척 갈아냅니다. 소는 사람이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소를 위해 희생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큽니다. 이처럼 소가 가져주는 큰 유익을 위해서 삶의 작은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편안함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을 통해 얻는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길은 고난과 희생이 따를 수 있으나, 그 길을 통해 얻는 존귀와 영광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4: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어떤 이유로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태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특별히 6절에서 말하는 ‘거만한 자’는 ‘타인을 비웃고, 무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남들보다 내가 더 높은 존재’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교훈을 들려주어도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거만한 자가 지혜를 얻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당대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지혜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들의 마음에는 하나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께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집단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지혜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거만한 자들은 이처럼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반대로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고 했습니다. ‘명철한 자’란 하나님 보실 때 무엇이 옳고 그른 지 판단하려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부 베드로’, ‘사마리아 여인’, ‘세리장 삭개오’ 등 바리새인들과 비교하면 종교적 교육을 하나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 보실 때 무엇이 옳은 길인지 분별하고 그 길이 여태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다를지라도 끝까지 따르겠다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죄를 ‘심상히 여긴다’는 말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미련한 자의 특징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죄를 짓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과 달리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은총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잠 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악을 꾀하는 자, 악을 행하는 자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도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도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정하신 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의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흥하게 됩니다. 이 단순한 영적 원리를 잊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