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기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선택의 기준으로 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선택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만이 우리 삶에 참된 기쁨과 평강이 주어지고,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14절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 스스로의 지혜만으로는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또한 사냥꾼의 그물처럼 세상에는 우리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유혹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때 지혜로운 자의 조언은 우리들이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와줍니다.
15절을 보면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본래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란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과 ‘호의’를 의미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윤리적 삶을 살아가게 하고, 그들의 삶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궤사한 자’는 쉽게 번역하면 ‘거짓말쟁이’, ‘사기꾼’을 가리킵니다. ‘험하다’는 것은 돌무더기로 된 걷기 힘든 험난한 지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묘하게 이웃들을 속이는 자, 간사하게 거짓을 행하는 자들의 길은 험난할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과 번영을 위하여 사람을 속이고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결국 패망의 길에 이르게 될 것을 알려줍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3: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슬기로운 자는 밤낮으로 변화하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변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이처럼 슬기로운 자는 일관된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선택의 기준이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관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자신도 후회할 결정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훈계는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자에게 올바른 길로 돌아오라는 지혜자의 권면이고 가르침입니다. 훈계를 버리는 자는 가난해지고, 수치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명마도 재갈을 물리지 않고, 고삐를 꽉 붙들고 있지 않으면 말을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 수가 없습니다. 훈계와 견책을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되는 옳은 말, 좋은 말도 잔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비위에 거슬린다 할지라도 겸손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 자는 존영을 얻게 됩니다. 18절에서 ‘존영을 얻는다’는 것은 존귀한 삶을 살아가게 되며, 비중 있는 인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훈계를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복주시고 높이 세우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훈계’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 훈계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것을 지혜자가 훈계하고 견책할 때 받아들이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훈계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얻는 복을 동일하게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과 교제하는 지 주의하라고 권면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함께하는 자는 지혜를 얻게 되고, 미련한 자와 교제하면 해를 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주변에 두면,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우며 우리들도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감정과 상황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달라지고,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자들에게도 악행을 범합니다. 따라서 미련한 자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21-22절을 봅시다. “(잠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솔로몬은 의인과 악인이 그들의 인생 가운데 받게 될 완전히 상이한 보응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죄인의 삶에는 재앙이 따라옵니다. 21절에 “재앙이 따른다”는 것은 “재앙이 죄인을 추적하고, 뒤따른다”는 뜻입니다. 죄인들은 아무리 재앙을 피하려 해도, 재앙이 집요하게 추적할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과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의인의 삶은 시편 23편 다윗의 고백과 같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의인에게는 선하게 살아간 복과 은총이 확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22절 말씀처럼 한 세대가 여호와께 충성하며 살아갈 때 그의 자녀들까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내 자녀가 복 받는 것만큼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 선을 행하는 자들의 가정까지도 돌보시고 책임지시고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훈계를 겸손하게 듣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삶 속 중요한 일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지혜로운 길, 선한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기쁨의 길이요, 풍성한 복이 머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