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6절 말씀을 보면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유덕한 여자’란 말은 도덕적으로 순결하며, 지혜로워 어떤 어려움도 끝까지 인내하며 슬기롭게 이겨 나가는 여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도덕적이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유덕한 여자”와 반대되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로 22절에 나오는 “아름다우나 삼가지 아니하는 여인”입니다. 여기서 ‘삼가지 아니한다’는 말은 도덕적인 결핍과 순결함을 포기하고, 사람의 내면과 외적 행실이 불량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여인은 비록 그 겉모습이 심히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돼지 코에 값비싼 금고리를 달아 놓은 것처럼 가치 없는 인생이 될 것이란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외모 지상주의라고 부릅니다. 사람마다 외모에 집착합니다.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찾는데 외모로 사람을 고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외적 아름다움 보다 보이지 않는 실력과 인격을 중요시할 것을 권면합니다. 외모를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가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전부인냥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덕을 세우는 심성과 순수한 믿음과 순결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격의 아름다움을 높게 평가하십니다. 아무리 젊은 날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겉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이 갈수록 깊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모와 돈, 재력, 권력 같은 외적인 조건들을 채우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주를 닮아가는 인격으로 채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요소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영적 성숙과 덕을 세우는 삶에 있습니다.
18-20절을 보면 선을 행하는 의인과 죄악을 즐겨하는 악인이 마지막에 얻게 될 결과가 얼마나 다른 지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 11:18)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외적인 것만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냥 살아가는 악인의 삶은 허무함 밖에 남지 않습니다. 굴뚝 위로 올라가며 사라지는 연기처럼 악인들의 삶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19절을 보면 악을 따르는 자가 결국 이르게 되는 것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반드시 보응하시기에 악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살아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뿌린 의로움에 대한 상도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붙들어 주십니다.
21절을 봅시다. “(잠 11: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악인들은 더 큰 악을 행하려고 손을 마주잡습니다. 마치 조직 폭력배들이 더 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는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인들이 서로 결탁하여 견고한 세력을 구축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과 벌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의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자손까지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는 아버지의 믿음으로 자녀가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녀들의 삶까지도 복주시고 친히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힘이란, 주먹, 돈, 권력, 명예가 힘입니다. 이러한 힘의 원리로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힘의 원리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도덕적이고, 순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돌보시고 복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성패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에 있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지켜 살아가는 것에 있다는 것을 솔로몬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악인과 손을 잡는 자는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24-25절 말씀은 재물을 가지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잠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써야 할 것도 아껴 쓰는 구두쇠 인생을 사는데도 더욱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가진 소유를 나누어 주며 구제하는데 사용하는 자는 더욱 부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과도히 아끼며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될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근검 절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과도히 아끼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근검 절약하여 남는 것을 통해 필요한 이웃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구제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가진 재물을 이웃들과 나누지 않는 것도 악행이며 불법임을 가르쳤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재물을 쌓아 놓는 것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웃을 위해 구제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가 가진 부는 결국 그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물질의 축복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잠언을 자세히 읽어보면 곳곳에서 수차례 ‘구제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 경건은 단순히 기도, 말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25절 말씀을 봅시다. (잠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하나님은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축복하셔서 그들의 삶이 풍족하게 되고, 나눔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도 더욱 윤택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8절 말씀처럼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다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서 맺는 푸른 잎사귀 같이 사시사철 풍성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덕을 세우며, 순결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이웃을 돌보고,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는 기쁨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이러한 의인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