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8장에서 지혜는 마치 사람처럼 등장하고 있습니다. 1-5절까지 지혜는 사람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자신을 찾으라 초청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길가, 교차로, 성문 등 사람들이 자주 지나 드는 곳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소수의 엘리트나 부자 혹은 특권층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지혜는 저 높은 히말라야 산 정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잠수함을 타고 바다 깊은 곳에 가야 있는 거도 아닙니다. 우리 일상 속에 지혜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과 가게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는 집에도 지혜는 존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고도의 지식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요, 멘사에 가입할 만큼 똑똑한 아이큐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와 자세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습니다.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지혜를 들으려고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자기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진실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혜’가 딱 그런 심정입니다. 지혜는 누구든지 자기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에게 재물과 존귀함을 주려고 쌓아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혜의 가치를 알고 그에 합당하게 대하고 또한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있다면, 지혜는 좋은 것들을 풍성히 줄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18절을 보면, 지혜는 자신에게 부귀와 영예, 수많은 재물과 형통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19절에는 지혜가 자신을 얻는 자는 정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지혜를 가진 자가 얻을 순수 이익은 은을 얻은 것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지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자에게 풍성한 복을 가득 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길거리와 광장 등 여기저기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쳐봐도 지혜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혼기가 한참 지난 아들의 짝을 찾기 위해서 선 자리를 하나 잡았습니다. 선 자리에 나올 아가씨에 대한 정보를 어찌어찌 알게 되었습니다. 보니까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미모면 미모, 학벌이면 학벌, 직장도 좋고, 부모님도 두 분다 인품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아가씨가 요리도 잘하고, 집안 살림까지 잘합니다. 성격도 싹싹하고, 젊은 사람이 신앙도 좋아서,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믿음도 좋데요. 부모님은 아가씨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정작 선을 보러 나가야 하는 아들 녀석은 시큰둥 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달랩니다. “얘,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는 게 흔한 줄 아니? 너 그러지 말고 한 번 나가봐.” 아들이 말합니다. “엄마 내 스타일이 아니야…” 부모 속만 타는 거죠. “아니, 너는 이 좋은 아가씨를 두고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려고 그러는 거냐?” 오늘 솔로몬의 마음이 바로 이 부모와 같습니다. 세상에 지혜보다 더 훌륭한 신부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를 소개해주고 싶은 거에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다는 것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 삶을 한 번 살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자기 스타일 아니라는 이유로 선 자리 안 나가겠다는 노총각 아들 등 떠미는 어머니 심정으로, 솔로몬은 우리들에게 지혜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11절 보세요. 누구든지 그녀를 얻으면 값진 진주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은과 금을 얻는 것도 이 여인을 얻은 것보다 낫지 않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지혜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혜를 놓치면 평생 땅을 치고 후회할 거라는 거죠. 지혜는 언제나 선하고, 올바르고, 정의롭습니다. 그러니 지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그 인생이 얼마나 복된 삶이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도대체 이 지혜라는 여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12-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8: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2절을 보니 지혜가 사는 곳의 주소가 나와 있습니다. 명철, 지식, 근신을 찾는 자가 곧 지혜를 얻습니다. 이 세가지는 모두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선악 간에 파악하는 ‘분별력’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그것이 곧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미 솔로몬은 이러한 분별력 곧 지혜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절을 봅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13절을 보니, ‘교만, 거만, 악한 행실, 패역한 입’입니다. 이러한 죄악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미워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림자도 없게 하겠다고 배척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는 진지한 삶의 태도가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18절에 지혜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지혜는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자들이 곧 자신의 사랑을 입을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려는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가 있다면, 이미 지혜는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달콤한 속임수로 유혹하는 음녀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지혜의 초청하는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부어주실 놀라운 축복의 약속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곧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가 삶 속에 충만하여, 크신 은혜와 복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