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그가 사는 왕궁에서 창문 밖으로 한 어리석은 청년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은 해가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 음녀가 살고 있는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 때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내일의 삶을 위하여 잠자리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 어리석은 청년은 남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때에 비로소 길거리로 나와 결국 깊은 밤 흑암 중 활동을 시작하는 음녀를 만나게 됩니다. 어리석은 청년은 음녀를 만나기 위해 일부로 그 시간 뒷골목을 찾아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성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그 결과 지금도 요셉은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반대로 유혹이 머물고 있는 환경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온 몸을 태우는 불덩이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멸망의 길을 향해 나아간 것이죠.
11절을 보면 음녀는 마구 떠들고 있습니다. ‘완패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어두운 밤에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오늘밤만 특별히 이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 그녀의 모습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때로는 길거리에서, 때로는 사람들 많은 광장에서, 때로는 길모퉁이에 서서 유혹할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단장한 음녀는 그의 집 앞을 걸어가는 청년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잠 7:13)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잠 7:14)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잠 7: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오늘 처음 만난 이 청년을 붙잡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입을 맞추며 청년을 유혹합니다. 음녀는 자신이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화목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5대 제사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화목제는 이웃과 잘못된 관계를 회복했을 때 드립니다. 음녀가 자신을 가리켜 “내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무런 죄도 없고 문제도 없는 깨끗하고 정결한 여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어리석은 청년을 유혹하기 위해서 일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은 ‘화목제’를 들먹이며 정결한 척하고 있는 것이죠. 음녀는 화목제를 통해 모든 인간 관계가 다 정리되었고, 이제 그녀가 새출발을 하려고 하는 이 절묘한 타이밍에 자기 눈 앞에 청년이 나타났으므로 둘은 ‘천생연분’(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연)이나 다름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미끼로 삼아 어리석은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과 음행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뻔뻔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6절부터 음녀는 청년에게 자기의 화려한 침실을 소개합니다. 이는 청년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육체적 쾌락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죠. 16절에 나오는 ‘화문 요’는 비스듬히 기낼 수 있는 방석이나 베개를 말합니다. 자기 침상에 푹신한 베개가 있다는 것이죠. 또 아름답고 화려하게 수놓은 이불이 있습니다. 이 당시 애굽 산 비단은 매우 아름답고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음녀의 침실에는 여러가지 향료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몰약’, ‘침향’, ‘계피’ 이 세 종료의 항료들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아주 값비싼 향료들이었습니다. 음녀는 어리석은 청년에게 자신의 화려한 침실을 소개함으로써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음녀는 청년이 자신과 함께 육체적 쾌락을 탐하도록 유혹합니다. 18-20절 말씀을 봅시다. “(잠 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잠 7: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잠 7: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음녀는 청년에게 자신의 남편이 먼 여행에 갈 경비를 가지고 집을 떠난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를 통해 청년이 안심하게 하고, 자신과 함께 음행에 적극 가담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자신이 유부녀란 사실을 아무 부끄러움 없이 밝히는 음녀의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처럼 음녀가 끈질기게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하니, 결국 22절에 소년이 그 여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솔로몬이 이 청년에 대해 평가한 것을 들어보십시오. “(잠 7:22)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잠 7:23)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음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음행을 행한 자의 모습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습니다. 소가 자기가 죽으러 가는지도 모르고 도살장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음녀의 유혹에 끌려가는 청년은 자신이 죽을 운명도 모르고 음녀에게 넘어갔습니다. 음녀를 따라간 청년의 삶은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결국 파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인데, 화살이 그의 간을 뚫어버릴 것입니다. 간이 화살에 뚫린다는 이 말은 얼마나 끔찍한 모습입니까? 이처럼 음녀를 따라간 청년의 생명이 파멸되고, 그의 인격이 무너지고 인간 관계가 파괴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에게 주의를 시킵니다. 음녀로 인해 죽은 사람이 이 청년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음녀의 유혹에 걸려 넘어갔습니다. 26절을 보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합니다.” 그 수를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27절에 솔로몬은 음녀의 길은 죽음의 길이고, 그가 들어가는 곳은 사망의 방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음녀를 따라 행음의 길을 선택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음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결국 죽음입니다. 죄악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죄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망하게 합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괴로움이 두 눈과 마음에 차오르는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행의 길을 버리십시오.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달콤하고 치명적인 죄악의 유혹도 모두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곧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자들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