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러나 잠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2021년도를 살아가는 우리 실생활 속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들이 담겨 있습니다. 잠언 6장 1절은 보증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증 서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웃이나 타인을 위해 보증 서는 일을 피하라고 수차례 경고합니다. 솔로몬은 잠언 곳곳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곤경에 처한 이웃의 채무를 위해 보증 서는 것을 하지 말라고 언급합니다. 동료의 채무로 인해 자기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보증을 들게 되는 경우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경솔하게 담보와 보증을 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만일 어떤 사람이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동료를 위해 담보나 보증을 섰다면 그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냥군이 설치해둔 올가미에 걸린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담보와 보증을 선 사람을 마치 함정에 빠진 동물 같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웃이 자신의 담보와 보증을 해제하도록 신속하게 행동하라고 권면합니다. 3-5절을 봅시다. “(잠 6: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잠 6:4)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잠 6: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3절에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라고 되어 있는데요, 사실 이 본문은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너는 가라. 너는 스스로 겸손히 하라. 그리고 너는 이웃들에게 성가실 정도로 부탁하라”는 의미입니다. 담보와 보증의 의무에서 벗어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솔로몬은 이처럼 담보와 보증 문제에 대해서 다급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채무자가 정해진 기간 내에 빚을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채무자 대신 채권자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고대 사회에서는 보증을 선 사람이 채권자에게 전 재산을 다 빼앗기고, 모든 가족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대사회에 노예는 인격적 존재이기 보다는 주인의 소유 중 하나인 물건 취급받는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사악한 채권자를 잘못 만나면 노예로 비참한 속박과 심지어 죽음도 면치 못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추격해 오는 사냥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노루가 쉬지 않고 도망가듯이, 담보와 보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쉬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담보와 보증 문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어떻게든 되겠지’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그물에 걸린 새가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듯이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6절부터는 새로운 주제가 시작됩니다. 바로 게으름과 나태를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앞날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삶을 나타내기 위해서 개미를 예로 들었습니다. 6-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 6: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잠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솔로몬은 개미의 부지런한 생활방식과 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습성을 유심히 관찰하여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개미는 누가 강제로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지런하게 움직입니다. 그들을 움직이고 조종하는 감독관이 없어도, 먹을 것을 모으기 위해서 수고를 다합니다. 개미가 부지런하게 일하여 먹을 것을 저축하는 데 반해, 나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하는 행동들이 미래에 궁핍과 굶주림을 가져다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리석게 이를 외면하고 하나도 대비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궁핍이나 곤란을 위해 그 어떤 준비나 대비도 취하지 않고 방관하는 무책임한 나태한 자들의 삶을 질책했습니다.
게으른 자들의 특징이 잠이 많다는 것입니다. 9-11절 말씀을 봅시다. “(잠 6: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나 (잠 6: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잠 6: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른 사람하면 떠오르는 자세가 침대나 바닥에 누워 있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자세 아니겠습니까? 그는 아침이 밝아와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나태함과 영적인 파멸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게으른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찾는데도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자는 기도를 태만시 할 것이고, 나태한 마음으로 성경을 덮어둔 채 읽지 않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게으른 삶을 경계하며, 게으른 자는 결국 가난해지고, 궁핍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난이 게으른 자의 삶에 강도 같이 찾아와 빼앗아가고, 적군이 마을을 습격하여 백성들의 식량과 귀중품을 모조리 빼앗아 가듯이, 게으른 자는 결국 삶이 궁핍 해집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는 개미들과 같이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잠언이 기록된 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식들은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며, 그것이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참된 지혜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