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잃었다 되찾은 삭개오 (누가복음 19장 1-10절)

여리고 성에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으며 부자였습니다. 이 당시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유대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동족에게 세금을 걷어 로마 제국에 상납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리들이 로마 군사들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여 정해진 돈은 위에 상납하고, 남은 돈들은 몰래 자기들 배를 채웠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세리라는 직업은 살인자, 도둑, 창녀와 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악하고 천한 죄인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 역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 낙인 찍힌 채 많은 미움을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가슴 속 한 구석은 뻥 뚫려 있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삭개오가 살고 있던 여리고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여인들이 빨래터에 모이면 예수님께서 병 고치신 귀신들린 이를 고치신 이야기로 가득했을 것이고, 저녁식사 때 가족들이 모여 앉아 온통 예수님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소문의 주인공인 예수님께서 직접 여리고 성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에 수많은 인파가 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여리고 성에는 살고 있던 세리장 삭개오 역시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애써봤으나, 허다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번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길을 앞서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보다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인파들이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뽕나무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삭개오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5절 말씀입니다.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뽕나무를 우러러 보시고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삭개오는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이게 마치 무슨 느낌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유명 가수의 콘서트장을 갔다고 상상해봅시다. 가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잘 보이는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날 전혀 알리 없는 그 가수가 갑자기 나를 주목하여 쳐다봅니다. 그리고는 마이크로 내 이름을 불러줍니다. 소름이 끼치지 않겠습니까? “아니?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지지 않겠습니까? 삭개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삭개오는 이 날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이름까지도 말입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이 내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삭개오의 집에서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가장 친밀한 교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절대로 이방인을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식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다는 것은 그와 교제를 나누고, 우정을 쌓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눅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매우 기뻤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는 세리장이기에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고, 그를 죄인 취급하고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자기 집 저녁에 초대해 주지 않았고, 상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으나,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를 칭송합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 곁에 있으려고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셔서 함께 식사하고 싶어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가장 경건한 사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장 높은 종교지도자의 집에 들어가고자 하셨다면, 그들도 두 손을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사람들에게 지탄받고 욕먹고 죄인으로 불리는 삭개오의 집에서 머물고 그와 교제 나누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셨다는 기쁜 마음에 단 걸음에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는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거나 하나님의 위대하신 선지자 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가장 천하고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받는 세리와 교제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수군거리며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이러한 결정은 예수님의 명성에 먹을 칠하는 아주 잘못된 선택인 것처럼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날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영혼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말했습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고백은 그가 지난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여태까지 돈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족의 등골을 빼먹으며 죄인이요, 매국노란 소리까지 들으면서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절히 원하던 부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공허함에 삶이 더욱 외롭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이 벌어온 재산 중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결심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구체적인 결단을 통해 우리는 삭개오의 회개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삭개오의 회개를 보시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삭개오 역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여태까지 사람들은 삭개오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동족의 배신자라고 그를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한 삭개오 역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삭개오와 같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삭개오입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삭개오입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와 같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회가 될 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 잃어버린 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