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그를 공격하는 원수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그를 넘어뜨리는 적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불행한 상황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소망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다윗은 고통과 환난 가운데도 자신의 영혼은 잔잔한 호수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인생의 고통, 세상의 유혹 등 그 모든 파도와 폭풍우 속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께만 향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 것 얼마나 많습니까? 하루 종일 TV, Youtube, 인터넷, 영화, 음악, 드라마 등 하루 종일 사람들의 눈과 귀가 그곳에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는 참된 만족이나 참된 평화가 깃들지 못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눈과 귀를 하나님을 향하게 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구원, 자신의 참 소망이 주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됩니다. 다윗과 같이 우리들의 시선도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상에 빼앗긴 눈과 귀를 다 사로잡아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이고 참된 구원이 되십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62: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재물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명예를 추구합니다. 재물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힘과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재물도 권력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다윗은 오직 주님만이 반석이시요, 구원이시요, 산성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세상의 것들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것이죠. 2절에서 나타나는 다윗의 고백을 보면 전부 앞에 전부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산성’ 되신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계시고, 자신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며, 하나님을 향한 그릇된 불신과 의심을 갖고 계신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이 저 아무게 집사님의 구원 되시고, 저 아무게 장로님의 산성 되신다는 것은 믿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는 듣지도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성경은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산성 되십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실로 우리 모두의 구원자 되시며, 보호자 되십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62: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시 62:4)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악인들을 고발했습니다. 다윗 한 사람을 넘어트리고 죽이기 위해서 다수의 악인들이 일제히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3절에 나오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는 둘 다 현재 다윗이 처해있는 위태로운 처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이전에 다윗 곁에서 그의 편인 것처럼 그에게 좋은 조언들을 해주는 사람들 같았으나, 알고 보니 속으로는 다윗을 저주하고 그가 망하고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6절에서 시인은 1-2절에서 했던 고백을 반복합니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시 62:6)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또 다시 그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노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서 7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구원과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노래합니다. 자신의 힘, 반석, 피난처도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8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과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초대합니다. 8절에 보면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따금씩, 가끔만 주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매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하라는 권면입니다. 슬플 때도 주님을 의지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고난의 때에도, 외로움이 몰려오는 순간에도 항상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주님을 의지하라고 다윗은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우리 삶의 염려와 근심을 내 속에 담아두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쉼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한국에서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대 일어난 일입니다. 시골길을 달리던 택시운전사가 머리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할머니 한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할머니께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님, 차에 타세요.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 인사를 한 후 차에 탔습니다.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탄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전히 할머니께서 머리에 짐을 지고 계셨던 것이죠. “할머니, 왜 짐 보따리를 내려놓지 않고 그렇게 머리에 이고 계세요? 짐 옆좌석에 내려놓으셔도 되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합니다. “기사 양반, 내가 폐를 끼쳐서야 쓰것소. 차를 공짜로 얻어 타는 것도 미안한데 짐까지 내려놔서야 쓰나?”
혹시 우리들의 모습이 이 할머니와 같지 않습니까? 기도의 자리에 와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세상 염려, 마음의 근심 걱정 내려놓지 못하고 우리가 이고 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수고와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8절에서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는 다윗의 권면과 같이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9절을 보십시오.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뿐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허무하고 연약한 존재입니까? 10절을 봅시다.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다윗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헛된 소망인지 언급합니다. 사람의 힘도, 재물도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11절에 다윗은 모든 권세는 주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62:12)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다윗은 권세와 힘뿐만 아니라 ‘한결 같은 사랑도’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했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은 심판하시고, 주를 의지하는 자들은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피난처는 사람도 아니요, 재물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 되십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그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 처한 다윗의 안전한 피난처 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를 의지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는 보호자가 되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