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녹음 문제로 새벽예배 설교 음성이 없음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 중 대다수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재산 축적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많은 부를 갖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이 돈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허망합니까? 한 평생 자신이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불안과 염려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결국에는 자신이 가진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삶… 시인은 이와 같이 재물과 부에 눈이 멀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멸망하는 짐승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죽을 운명을 앞두고도 영원한 삶을 위해 살아가지 못하고, 눈앞에 물질이 전부인 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번 시인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통해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시인은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을 한 번 들어보라고 초대합니다. 시인은 수금을 타며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6-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49: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시 49: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시 49:8)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6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들, 자신의 부유함과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돈이 힘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 앞에서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심지어 무릎도 꿇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인은 자신은 그런 자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사람이 권력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고, 가진 돈과 재산이 많아도 그것으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부자라도 사람은 자기 생명을 구하지 못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죽은 백만장자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서 자기 생명을 돈 주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기 목숨 값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것은 너무나도 귀중하여 그 값은 영원토록 마련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과 부요함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생명 값을 치르지 못하고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없기에 시인은 인간이 이와 같이 무능하고 무력하며 그러하기에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시인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9-10절입니다. “(시 49:9)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시 49:10) 저가 보리로다 지혜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생각도 해서는 안됩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도 죽고,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습니다. 저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은 자기가 다 써보지도 못하고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갑니다. 11절을 봅시다. “(시 49: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사람들은 땅을 사고 집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해 둡니다. 집에 자기 이름도 새겨 놓고, 땅도 자기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토록 자신의 것이 될 줄로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한 번 주변에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죽은 후 한 세대, 두 세대만 지나도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시인은 인간이 영원토록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12절을 봅시다. “(시 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이 제아무리 영화로운 삶을 산다고 해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짐승들과 같이 똑같이 소멸될 것이기에, 다시 땅의 먼지로 돌아갈 것이기에 도축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로는 지독히 허무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시 49: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시 49:14)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시인은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만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라 부릅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을 뒤따르며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는 그들의 주장을 즐기는 자들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그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14절에 보면 저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양의 무리 같습니다. 양은 시력이 어두워서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달려가다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양들처럼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이 전부인냥 살아가는 자들도 결국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15절에서 이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신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15절 말씀을 봅시다. “(시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시인은 부자도 권력자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힘보다 재산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냥 살아가던 자들을 향해 시인은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16-17절 말씀입니다. “(시 49:16)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시 49: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인은 혹시 주변에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거나,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스스로 초라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어차피 그 사람도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그의 재산도 그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아무리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고 해도 그 사람 역시 마침내 자신의 조상들처럼 죽음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0절이 결론입니다. “(시 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존귀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도살장에서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명’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을 부리는 권력, 사람들에게 받는 칭송, 화려한 부와 재산 이 모든 것이 세상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것들에 집착하고 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어차피 다 사라질 것들이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존귀하게 지음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날마다 이 주님 찬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로 이 존귀함을 갖고 태어난 존재임을 깨닫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다.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분을 즐거워하며, 하나님만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