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던 날, 이스라엘 전역에서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사울 왕이 망가트린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고 세울 새로운 왕 다윗이 등극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머리에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세우신 다윗에게 큰 기대와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윗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날로 경제적으로 부해지고, 군사적으로 강대해짐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사실 사울 왕 때나 다윗 왕 때가 군사적으로 특별한 차이가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 왕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바꾸어 버린 것이죠.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잘못된 왕으로 인해 망해버린 나라가 한 둘이 아닙니다. 때로는 폭군 같은 왕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초를 당하기도 하고, 탐욕에 눈이 먼 왕으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누가 왕의 위치에 앉아 있느냐는 백성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누구나 보이지 않는 왕좌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그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는 그 왕좌를 주님께 드리고, 자신은 그 왕좌 앞에 엎드려 살아갑니다. ‘누가 왕인가?’하는 이 주제는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교만한 사람들은 그 안에 가득한 죄악으로 인해 패망의 길, 저주의 길,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겸손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평강 속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마음 속 왕좌의 자리에 앉아 있는 왕은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까? 돈입니까? 재물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건강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그 앞에 엎드려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속 시인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지존하신 왕, 여호와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시인은 온 세상 만민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팔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며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대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인은 만민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해 힘차게 박수를 치고 즐거운 환호성을 외치며 주님께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혹시 가수 들이 콘서트 하는 모습을 보신적 있으십니까? 공연 전 수만 명의 관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무대에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시간이 되어 환한 조명이 켜지고 무대가 열리고 가수가 나타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그를 큰 소리로 환영합니다. 어떤 팬들은 그 가수를 너무 좋아해서 그를 보고 기쁨의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시인은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대상을 바라봄과 같이 박수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찬양하고 즐거워하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분명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이와 같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커다란 기쁨에 목소리를 높여 소리 치며 찬양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찬양은 꼭 천국에 가야지만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곳에서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우리 일상의 현장이 하나님께 드리는 뜨거운 찬양의 콘서트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녁시간 어린 아이들이 퇴근한 아버지가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올 때 “아빠 왔다!”하고 기뻐하며 현관으로 달려가는 그 기쁨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찬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 가운데 주를 향한 차고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안에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이와 같이 소리치며 찬양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온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장엄하신 지존자 하나님이심으로 그 분을 찬양하라고 이야기합니다. 2절입니다. “(시 47:2)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2절을 보십시오. 여기에 사용된 ‘지존하신’이란 히브리어로 ‘엘욘’이란 단어가 쓰였는데 이는 ‘최고의 신’을 부르는 칭호입니다. 이 단어를 하나님께 사용했습니다. 여호와는 지극히 존귀하시고 장엄하시며, 온 땅을 다스리는 크신 분이십니다. 이방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3절을 봅시다. “(시 47: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열방을 우리 발아래 복종케 하시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발 아래 복종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 하나님은 온 세상 만민을 성도들 발 아래 복종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완벽한 승리의 근원이 되십니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세리, 박찬호, 박지성, 김연아 같은 전설적인 운동선수들을 보면 환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은퇴해도 사라지지 않는 쌓아 놓은 그들의 업적이 유명 운동선수들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게 하는 것이죠.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신 업적을 본다면 그분을 큰 소리 높여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5절을 봅시다. “(시 47: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올라가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즉 ‘법궤’가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무엘하 6장을 보면 다윗 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때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즐거이 찬양하며 나팔을 불고 기쁨으로 여호와의 궤를 메고 왔습니다. 나팔은 왕의 즉위식에 사용되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신년 축제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시인은 온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으로 향하는 가운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절에 온 이스라엘에 울려 퍼진 찬양을 봅시다. “(시 47:6)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시인은 “하나님이 곧 우리의 왕이시라!”는 고백으로 찬송했습니다.
7절을 봅시다. “(시 47: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여기 보니까 온 땅의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되 ‘지혜의 시’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통상 시편 표제어에 ‘마스길’이라고 쓰인 시들을 ‘지혜의 시’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32편, 42편 44편, 45편을 보면 표제어에 ‘마스길’이라고 써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찬양들입니다. 우리 가슴 깊이 들어오는 심호흡처럼, 찬양을 통해 우리 영혼 속 깊이 하나님을 되새기는 찬양입니다. 그럼 이 지혜의 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지존자되신다는 사실입니다. 8-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47:8)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시 47: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온 세상 가장 높은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9절을 보면, ‘열방의 방백’, 즉 세상의 모든 고관들도 하나님 앞에 소집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세상의 모든 군대를 의미합니다. 그들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보다 위대한 왕은 없다는 사실을 이와 같이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지존자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 합당하십니다. 그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다한 찬양을 날마다 올려드리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