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탐심에 사로잡힌 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매우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듯했으나, 실상 그들의 마음은 탐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가장 의롭고 거룩한 줄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신다.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러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예수님은 거짓 거룩과 가짜 신앙을 가지고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은 하나님 보실 때 가증스러운 자들이라고 강한 어조로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는 오만한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결코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에 위배되거나 어긋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도래로 말미암아 구약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나라가 시작 되었어도 율법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천하가 없어져도 여전히 율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6:18)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며,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사람도 간음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문맥상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파기하는 일들이 성행하는 시대가 와도, 즉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시대가 와도 율법 자체는 폐기되지 않고 영원하다는 실례를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많은 율법을 왜곡했습니다.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이혼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래 율법은 아내가 남편에게 수치를 주는 일을 한 경우, 그것이 법적 증거를 갖게 되면 이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율법의 규정을 어기고 정당한 사유가 없이도 이혼 증서만 써주면 이혼해도 괜찮다는 그릇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자기들의 정욕과 탐심에 따라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그릇된 이혼관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으로써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했으나, 예수님은 도리어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율법을 곡해하고 있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자, 이제 이야기는 19절부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가장 비싼 옷을 입고 매일 호화스럽게 살았습니다. 한편,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몸에는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습니다.
나중에 그 거지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혔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소리쳤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 그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 찍어서 제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지금 이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얘야, 네가 살아 있을 때를 기억해 보아라. 네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는 동안 나사로는 온갖 나쁜 것만 다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있어 여기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거기서도 우리 쪽으로 건너올 수가 없단다.” 또 부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제발 부탁입니다. 나사로를 저희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제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들이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오지 않도록 나사로가 가서 경고하게 해 주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조상 아브라함이여, 누군가 죽었던 사람이 가야만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비록 죽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살아난다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하여 현 세상에서는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풍부하나 실상은 하나님나라에서 이미 버림받은 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부자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고 살지만,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남을 돕지 않고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살았던 바리새인들의 운명은 부자에 가깝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제 죽어서는 다른 기회가 없습니다. 한 번 죽으면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경고를 주시며, 재물을 섬기지 말 것을 다시 한번 경고하셨습니다. 재물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타인의 고통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않은 지 우리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자는 하나님께 드릴 마음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거북하고 불편할지라도 우리 영혼에 가장 유익합니다. 눈에 보이는 썩어 사라질 재물을 위해 살아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