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기록된 명령 외에도 자기들이 임의로 추가적으로 지켜야하는 명령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식사 전 손 씻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이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데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식사 전 손을 씻는 일은 신앙 정체성과 관련 있다고 여겨질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오늘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서 자기와 함께 식사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식사를 하시려고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식사하기 전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식사 전 손 씻지 않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례들을 지키는 데는 열심인 것에 반해 속으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씻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욕심과 악한 것이 가득 차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속에 있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모세오경은 거의 암송할 정도였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면 얼마나 대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리새인들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 안에는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정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위해서 거룩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생활 은 열심히 했으나 사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일 우리 주변에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새벽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와 같은 교회 공예배에 절대로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헌금생활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봉사합니다. 기도 시간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크게 기도합니다. 무엇 하나 신앙생활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보고 그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다고 평가하신다면 우리 고개가 갸우뚱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거룩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거룩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행동은 가장 거룩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마음은 더럽고 추악한 죄악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남들 볼 때는 신앙생활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양심을 속이고, 하나님의 칭찬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실 때 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은 껍데기만 남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책망한 것이죠. 심지어 42절에는 예수님께서 이들이 형식적으로 십일조 한 것에 대해서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에서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과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겉으로 율법의 의무만 지킬 것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거룩한 척 행동했고,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43절에 예수님은 이런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게 만든 무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그것이 무덤인지를 알지 못한다!” 율법에 따르면 시체와 접촉하면 7일간 부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덤을 밟지 않습니다. 무덤과 주위 땅도 시체로 인해서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마치 평평한 무덤 같아서 사람들이 무덤인지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한 바리새인들과 교제하면서도 그들의 속이 부정한 자들인줄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위선자 바리새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부정하고 더럽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계실 때,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율법교사가 말하기를 “선생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잘못 적용하며 살아가던 바리새인들에 대한 책망은 율법을 연구해왔던 율법교사들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폄하하고 모욕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율법교사의 항의를 받으신 예수님은 율법교사들도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도 화가 있다! 너희는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면서, 너희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이 당시 율법교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결한 삶과 부정한 삶에 대해서 세밀하게 설정해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몇 걸음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 어느 정도 무거운 것까지 들 수 있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율법교사들의 잘못된 성경의 가르침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율법교사들 본인들은 이런 무거운 규례를 지키려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위선적인 종교자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들을 배척하고 제거하는 일들을 당대에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해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에서 가장 먼저 죽은 아벨의 피로부터 역대하에 나오는 스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가 억울하게 죽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핏값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역대하 24장에 나오는 스가랴가 가장 마지막으로 죽은 하나님의 종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성경에는 말라기가 아니라 역대하가 가장 맨 마지막 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창세 이후 모든 주의 종들이 흘린 피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도 그대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았고, 동시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돕기는 커녕 그 길을 가로막았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부류,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이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누구보다도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종교생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께 가장 많이 책망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으로 그 사람의 거룩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 속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껍데기 신앙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주지 못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실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겉은 속과 같습니까? 종교생활의 활동들은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자비의 정신은 사라지진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시선보다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을 더 중요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의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본받지 말고, 겉과 속이 일치하여 마음과 정성을 담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