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그를 비난하고 흠잡으려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교사의 영생에 관한 질문에 예수님은 바로 정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견해를 물어보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이에 율법교사는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힘과 모든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율법교사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몰라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율법에 기록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위기에 빠트리고자 질문한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에게 답을 말씀하시기 보다 그의 위선을 드러내시고자 그에게 도로 질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대답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와 같이 살아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자신의 의도가 실패하자, 율법교사는 예수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위선적으로 두 번째 질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습니다. 때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생전 모르던 사람을 돕기 위해서 기름과 포도주를 소비했고, 거기다가 두 네나리온을 지불했습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사마리아인이 제사장과 레위인보다 선하게 그려지는 것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불쾌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야기가 끝나고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하고 물어보셨을 때 율법교사는 차마 “사마리아인 입니다”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37절 말씀을 보니,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하고 돌려서 말했습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누가 나의 이웃인가?”하고 질문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너는 힘든 처지에 있는 자의 이웃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 교수 즈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에는 이와 같이 사회적 약자와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7절에 예수님은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8절부터 장면이 변화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초대되어 그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등 여러가지 일로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언니를 도와주지 않고 주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손님은 많고,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어 마음이 급하고 분주했던 마르다는 이 모든 일을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로하며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너무 많은 일 때문에 걱정하며 안절부절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 좋은 쪽을 선택했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손님이 왔을 때 환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줄곧 강조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마리아가 가장 필수적이고 주요한 것,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며, 그 어떤 섬김도 말씀을 듣는 것보다 우선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고, 성경의 가르침을 공적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성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특권에서 제외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김을 준비했고,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쪽을 택했습니다. 둘 다 귀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섬기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분주함과 불안감 사역하게 됩니다. 섬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믿음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이제는 이 말씀에 따라 궁핍한 처지에 놓여 있는 형제 자매들을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그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주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