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예수님의 세례와 족보 (누가복음 3장 15~38절)

세례 요한은 전국에서 주목하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TV를 키면 그의 얼굴이 나오고, 신문에 그의 사진이 대문과 같이 크게 실리는 그 정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 방방곳곳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혹시 그가 여태까지 기다려 온 메시아가 아닐까?’하고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세례 요한은 최고 절정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하고 말했습니다. 인기와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 사람은 쉽게 변질되고 탐심의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각양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며 따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도 변하지 않는 겸손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목된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 뒤에 오실 메시아에게 돌렸습니다. 요한도 누가 메시아인지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그러나 요한은 겸손하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다만 메시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 할만큼 낮은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당시 주인의 신발꾼을 푸는 것은 노예들이 하던 일로,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에 비하면 그의 노예가 될 자격도 없을만큼 낮은 존재인가를 고백한 것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으나, 그의 두에 오실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 했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에 대해서, ‘성령 세례’와 ‘불 세례’가 각각 따로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악을 불로 태우심으로 정화시키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세례 요한에게 향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단 강에 오셨습니다. 요한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세례는 죄사함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22절을 봅시다. “(눅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세례 받으신 예수님 머리 위로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드디어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위한 삶, 즉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립니다. 따라서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구원자로서의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이 취임할 때 온 백성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또한 그의 취임을 온 국가 전체에 선포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자 하늘 문을 여시고 온 천하 앞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공포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머리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나사렛 예수가 바로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나이가 약 30세 즈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이 30세에 왕이 되어 통치를 시작했던 것처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도 30세에 온 우주의 왕으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리고 나서 23절부터 38절까지 아주 긴 족보가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족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윗 그리고 예수님으로 내려왔는데,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윗, 아브라함, 아담,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계보에는 총 77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계보를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한 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을 자세히 보시는 분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름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똑 같은 인물의 족보를 다루고 있는데 내용이 다를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다르냐 하면 기준은 다윗 이후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전부 다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의 아들로 솔로몬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솔로몬의 후손으로 탄생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기 누가복음에서 3장 31절을 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나단이란 인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넷째 아들입니다. 나단 역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셋째 아들입니다. 여기서부터 족보가 꼬이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후손으로 오신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아들 나단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마태복음은 아버지 요셉의 족보를, 누가복음은 어머니 마리아의 족보를 다루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두 족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이 다른 것이죠.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께서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이루어 영원토록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오신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불과 같은 성령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태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악과 사망을 짊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삶에 맡겨진 사명을 밝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뒤에 오실 구원자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고, 예수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구원자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