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6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 (누가복음 2장 41~52절)

유대인들에게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때에는 모든 유대인 남성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 3가지 절기 중에 가장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이 때는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예루살렘 순례에 동참했습니다. 당시 유월절은 무교절과 하나의 절기로써 무려 일주일 동안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동서남북 전역에서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도시 안에 모여 있는 장면을 한 번 떠올려보십시오. 도시 전체가 얼마나 북적거렸을까요?
이 당시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구들로 구성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전에 한 동네가 전부 가족으로 구성된 씨족 사회였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먼 길을 온 요셉과 마리아 부부 역시 친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내려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주일 동안 절기를 다 지키고,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대가족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아마도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함께 움직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함께 삼삼오오 모여서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어린 예수가 아이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행렬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룻길을 이동하고 나서야 친척들과 친구들의 무리 속에 아들 예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열두 살 어린 아이입니다. 아이를 잡아서 노예로 파는 인신매매가 성행했던 고대사회에서 어린 아이가 사라졌으니 부모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걱정되었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 도시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아들 예수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가도 도저히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이 타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3일 째에 성전에서 드디어 예수를 찾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전의 율법교사들 가운데 앉아 저희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질문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있던 무리들은 예수님의 뛰어난 통찰력과 지혜로운 답변에 놀랐습니다. 이와 같이 어린 예수님의 탁월한 지혜는 그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여호와의 지혜와 총명이 충만하신 메시아이심을 나타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48절을 봅시다. “(눅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마리아의 격양되고 흥분된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49절입니다. “(눅 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너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너를 찾느라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나는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집에 있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누가 예수님의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떠오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총 15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소년 예수가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른 호칭은 매우 독특합니다. 특별히 성전을 가리켜 ‘내 아버지 집’이라 하신 예수님의 인식을 통하여 우리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이미 소년 예수님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어린 소년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 분은 구원자 메시아이심을 알려줍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50절 말씀을 보면, “(눅 2: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천사로부터 아들 예수의 탄생의 신비와 목적에 대하여 듣고 이미 잘 알고 있어야 할 요셉과 마리아가 소년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들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계시를 직접 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의아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12년이라는 긴 시간 전 천사로부터 받은 계시와 예언을 예수님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51절을 이어서 보면 예수님은 즉시로 그의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나사렛으로 가셨고, 그의 부모에게 순종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아들이셨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직접 겪으심으로 우리의 아픔을 동정하실 수 있고 동시에 도와줄 수 있는 구원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4대 성인 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의 신비입니다. 오늘로서 예수님의 어린시절이 끝이 나고, 이제 내일 새벽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으로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저자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셨음을 기록함으로써 당대에 이단들이 주장하던 것,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환상이고, 가짜다”라는 주장을 뒤엎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심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의심이 들 때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전부를 십자가 위에 던지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