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2 마리아에게 전해진 예수의 탄생 예고

(누가복음 1: 26-56)
(눅 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 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눅 1: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눅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 1:42)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눅 1:43)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눅 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눅 1: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눅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 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 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 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를 신격화합니다. 천주교가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하늘에 올라갔다는 마리아 승천교리를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마리아가 하늘에 올라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것, 즉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며, 또한 우상숭배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또 하나의 사람일 뿐 결코 기도의 대상도 아니고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한쪽 극단에는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반대로 다른 쪽에는 이러한 천주교의 잘못된 마리아 숭배사상을 경계한 나머지 마리아에 관해서 지나치게 무관심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천주교의 그릇된 성경해석에 주의하여 마리아에 대하여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자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 기록된 인물이며, 동시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기에 우리는 이 여인의 행적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므로 인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것도 성도의 의무일 것입니다. 자, 그러면 마리아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도대체 마리아란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메시아 탄생, 동정녀 탄생을 마리아를 택하여 하셨을까요? 그녀가 무언가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고귀한 혈통 출신이라 그랬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가 굉장히 훌륭한 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선택하셨다고 중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리아로 선택 받은 이유는, 그녀가 가진 어떠한 재능이나 혈통이나 학벌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물론 천사가 그녀에게 와서 처녀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순종한 일, 그리고 그녀의 헌신적인 삶에 대해서는 이 여인에게 찬사를 보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특별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그녀를 선택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니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리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갑니다. 나사렛이 바로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도시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나사렛을 강조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여자를 고르는 일에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당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쎈 왕이 살던 궁전에 간 것도 아니고, 가장 거룩한 대제사장이 있는 성전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시골 촌 동네인 갈릴리 나사렛에 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의 출신 동네가 나사렛이라는 것을 보아 그녀가 특별할 것 없는 혈통이었으며, 게다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역사의 그 누구도 눈 여겨보지 않았던, 뭐 하나 특별할 것이 없는 여인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첫째로 그녀는 겸손하게 반응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마리아가 만약 교만한 여인이었다면 그녀는 “지당하신 선택이십니다. 나 정도되는 여인이야 그런 일을 하지요. 하나님이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이 좋으시군요.” 하고 반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9절 말씀을 보니 그녀는 놀라 하며, 어찌 나 같은 사람을 향해 천사가 은혜를 받은 자라 부르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표현했습니다. 3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스스로를 계집 종이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종이란 표현은 노예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주님 보시기에 너무도 비천한 계집노예일 뿐입니다.”하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진 이 겸손의 자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 나 정도 되면 구원 받을만하지.”하는 교만한 자세가 아니라, “주님 저는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란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34절에 보니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지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 일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본 것이지요. 이에 대한 천사의 대답이 바로 37절 말씀입니다. 3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래 마리아 너 말이 맞아. 원래대로라면 여자가 홀로 아기를 잉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이 일은 이뤄질 것이야.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어!” 천사는요 이 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능한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라고 마리아를 권면했습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47-48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 어떻게 처녀인 내가 아기를 낳아? 또 어떻게 나 같은 비천한 여인이 그리스도를 낳아?” 그녀는 이렇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으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 마리아처럼 믿음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올 수 있어? 어떻게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란 저 청년이 내 죄를 씻어주고 내 영혼의 구원자가 될 수 있어?” 이런 의심의 자세는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소식을 들은 마리아처럼 하나님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마리아에게는 겸손의 자세 믿음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마리아에게는 헌신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당대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아기를 낳는 다는 것은 돌에 쳐 죽임을 당할 충분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듯이, 마리아가 아직 사내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배가 불러오게 된다면 그녀는 죽음의 의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또한 지금 이 여인은 사랑하는 청년 요셉과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그 어느 여인이 자신의 약혼자에게 “나 임신했어!”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게 “안되요. 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어떻게 임신부터 합니까? 다른 여자 찾으세요.” 라고 반응했으면 역사는 전혀 다르게 변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아까 우리가 살펴 본 3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어요?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님 비록 처녀인 내가 잉태하여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내가 지금 앞두고 있는 요셉과의 결혼을 파해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입니다. 저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하나님 말씀대로… 무엇대로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 탄생에 자신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한 여인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의 자세로 반응했습니다. 아무리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우리의 삶을 헌신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 언제든지 원하시면 주님 말씀에 따라 저를 사용하여 주세요.” 마리아는 몸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영혼까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자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헌신의 자세로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2021년, 우리 역시 마리아처럼 겸손의 자세로, 믿음의 자세로, 헌신의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일어나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