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미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미 5: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미 5: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미 5: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미 5:8)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미 5:9) 네 손이 네 대적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미가 선지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약 700년 즈음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도시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베들레헴 에브라다” 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에브라다’를 베들레헴의 옛날 이름으로 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한양’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에브라다’란 이름은 ‘열매가 많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지명은 모두 이 도시의 풍요로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닙니다. 아주 작은 고을입니다. 지금이야 그 이름이 유명합니다만, 본래 베들레헴은 주민수가 적고 매우 조그마한 마을로서 특별하게 명예를 누릴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바로 이 작은 빵집 같은 도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마태복음을 보면 동방박사가 태어나실 왕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찾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롯 왕은 당대의 성경학자들에게 ‘메시아가 어디에서 탄생하겠느냐?’ 물어보았고, 성경학자들은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근거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만,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을 때, 때마침 로마 황제가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오늘날로 말하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동사무소에 주민 등록하기 위해서 갔다가 거기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이죠.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2절 말씀을 보니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메시아는 사실 그가 나시기 전 태초부터 존재하셨음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아무리 위대해도 태초 전에 존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가의 이러한 기록을 통해 바로 이 분이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성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미 5:3)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원수에게 붙잡혀 있으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3절에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라는 표현은 죄를 지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서 7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며 학대받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죄의 벌을 받는 그 기간을 이와 같은 고통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러나 이제 그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철자하게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고통 당하며 살아가던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게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4절에 메시아께서 그의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는지 그 모습을 살펴봅시다. “(미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땅끝까지 다스리십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지역과 민족들이 있으나, 마지막 때에는 땅의 모든 민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또 4절을 보니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그들로 안전하게 살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이어서 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특별히 여기 보면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5-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미 5: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미 5: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이 말씀은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 위해 공격해 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합하여 그들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메시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친히 원수 앗수르를 멸망시키실 것이란 예언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을 쥐고 있던 나라가 바로 ‘앗수르’입니다. 그러나 여기 기록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모든 이방 나라들을 포함하여 상징적으로 쓰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역시 혈통적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앗수르를 멸망시키시는 모습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무찌르시고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장면을 의미합니다.
메시아에 의해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7절을 봅시다. “(미 5: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풀 밭에 내리는 소나기와 이슬처럼 주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주의 백성들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7절에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갈 뿐,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8절 말씀을 보면, 이제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젊은 사자와 같아서 그의 모든 원수들을 진멸합니다.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곳마다 다 밟히고 찢기고 승리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메시아를 통해 누리게 될 영원한 승리를 가리킵니다. 메시아께서 모든 원수들과 대적들을 진멸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승리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은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서 살아가고, 그분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주시는 평화를 영원토록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