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5:13)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신 25:14)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신 25:15)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신 25:16)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신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신 25:18)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신 25: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부산에 위치한 어느 유명한 고기집의 메뉴판에 고기 1인분이 200g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 기자가 직접 1인분 고기의 무게를 조사해 본 결과 150g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인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묻자, 미안하단 말도 없이 오히려 동의도 없이 취재를 했다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냅니다.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동안 손님들에게 고기 무게를 속인 것이죠. 만일 우리가 저 식당의 손님이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문제는 이처럼 식재료의 무게를 속여 파는 가게가 한 두 곳이 아니란 것입니다. 한국에서 조작된 저울로 손님을 속이는 일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수산시장 입니다. 생선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조작하는 실태가 얼마나 심한 지,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상인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저울 눈금을 속이고, 장사하는 것은 남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웃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일 이처럼 물건을 사고 파는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한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싹트고 분쟁과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저울은 대부분 전자 저울입니다. 저울 위에 물건을 올려 놓으면 화면에 무게나 표시됩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바늘로 된 저울도 물건을 올려 놓으면 바늘이 무게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고대에 사용하던 저울은 저울이 무거운 쪽으로 기우는 식입니다. 한쪽 쟁반에 무게를 달고 싶은 물건을 올려 놓습니다. 쟁반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평해질 때까지 다른 한 쟁반에 돌로 만든 저울추를 올려 두어 무게를 계산합니다.
이 때 정직하지 못한 상인들은 겉으로는 똑같이 생겼으나 무게가 전혀 다른 2가지 저울추를 사용했습니다. 고객에게 물건을 팔 때는 무거운 저울추를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건을 살 때는 가벼운 저울추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눈을 속이는 거짓, 사기 행위로서 하나님께 가증한 죄악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이 두 가지 저울추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신 25:13)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한 삶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부정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하나님 보실 때 가증한 죄악입니다.
14절에 보면 ‘되’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되’는 곡식을 재는 단위입니다. 나무로 만든 뚜껑이 없는 사각형 상자로 곡식을 재는 단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4절에 되도 저울추와 마찬가지로 큰 것과 작은 것을 집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집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는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혹에 빠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런 두 가지 저울추와 되를 원천적으로 집에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부정직하게 행하는 자를 가증하게 여기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집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신 25:15)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나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장수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장수의 축복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신명기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의 삶을 인정하시고 복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17절부터는 이야기가 전환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직 군사로서 무기나 조직 체계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무리에는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아이들도 함께 섞여 있어 싸움 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이처럼 출애굽 직후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피곤한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람들이 바로 아멜렉 사람들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말렉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17-19절을 봅시다. “(신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신 25:18)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신 25: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아말렉 멸절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 수행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후 지키는 명령입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에게 벗어나게 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실 때”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평안하게 지낼 때입니다. 안타깝게도 막상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말렉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충분히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기 보다, 편안히 지내기를 선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편안하게 사는 길,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방법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은 길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삶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공정하고 부정직한 삶은 하나님께서 가증이 보시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직을 원하신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합니다. 이웃을 속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며 살아감으로써 주님 앞에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