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30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고전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고전 16:16)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고전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전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전 16: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고전 16: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오늘은 고린도전서의 결말 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깨어 있어, 믿음에 굳게 서 있기를 권면합니다. 13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정신을 바짝 차리라’, ‘영적으로 긴장하여라’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다윗 왕도 한 순간의 유혹에 죄악의 길로 넘어진 것과 같이, 사람의 영혼은 경계가 풀어져 버리면 금방 사탄의 미혹에 빠져 죄의 길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원수 사단이 계속해서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끊임없이 깨어 영적 경계를 무너트리지 않도록 주의시켰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라는 도전입니다. 세상과 사탄이 우리가 가진 복음에 대한 확신을 흔들려 하여도 절대로 미혹되지 말고 우리 믿음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확고히 둘 것을 권면합니다.
이어서 14절을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기를 권면합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사랑으로 섬기고 행하는 믿음을 갖기를 권면합니다.
15절부터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몇몇을 칭찬하고 추천하는 말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15절에 스데바나라는 사람을 언급합니다. 그는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아가야’란 고린도 도시가 속한 지역 이름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고린도가 ‘시’에 속한다면, 아가야는 ‘도’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스데바나는 이 아가야 지역에서 가장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입니다. 또한 스데바다의 집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 가정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가정입니까? 우리 가정이 하나님 보실 때 스데바나의 가정처럼 주를 섬기는 일에 열심 있는 사람들이라 하나님께 칭찬 받는 가정이 된다면 얼마나 복된 가정이 되겠습니까? 16절을 보면 바울은 이와 같이 주의 일에 동역하며 수고하는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자들과 보조를 맞추어 선한 일을 함께 성취하라는 뜻입니다.
17절을 보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교회를 대표해서 바울을 찾아 온 세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앞서 언급한 ‘스데바나’ 입니다. 바울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이 세사람이 자신에게 온 것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지냈기에 고린도 교회 소식이 무척 긍금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들이 와서 바울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었던 깃이죠. 또한 이 세 사람의 방문으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 그가 쓰고 있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다시 고린도 교회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절부터는 마지막 문안 인사 입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그들에게 문안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여러 교회들이 서로 지역이 다르지만, 계속해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돕고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19절에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십시오. 본래 초대교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처럼 교회 건물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다 가정에서 시작된 모임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을 주최하는 가정의 집이 곧 교회 건물이나 마찬가지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코로나19로 인해 교회 건물에 찾아오지 못하는 우리 상황에 큰 깨달음 줍니다. 교회란 건물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으로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장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 가정도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얼마든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교회의 문안을 전한 바울은 마지막으로 21절에 자기 자신의 친필 서명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을 전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안질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의 편지를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여 받아쓰게 했다고 봅니다. 비록 대서자를 통해 쓴 글이지만 골로새서, 갈라디아서를 보아도 마지막 단락만큼은 자신의 자필로 서명하여 문안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하나의 습관적인 표현으로 교회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담고자 하는 바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인 바울이 이 편지들에 친히 서명을 함으로써 편지에 ‘진정성’과 ‘권위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주의 재림이 올 것이기에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2절을 봅시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고 예수를 부인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은 결국 ‘하나님 사랑’하는 것 입니다. 또한 함께 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살아가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우리 형제와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