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7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힘쓰라 (고린도전서 14장 1-12절)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 14: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고전 14: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고전 14: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고전 14: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고전 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고전 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방언의 은사를 최고의 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내에 방언을 하는 자들은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방언을 하지 못하는 자들을 자신보다 영적으로 낮은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방언을 못하는 사람들도 방언하는 성도들을 시기하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방언을 주지 않으신 사실에 대해서 원망하기까지도 했습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이익을 줘야할 방언이 오히려 교회의 분열을 초래한 것입니다. 게다가 방언을 하는 자들은 공예배시에도 갑작스레 큰 소리로 방언을 함으로써 예배에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방언하는 자들의 모습을 본 불신자들은 교회가 정신나간 자들의 모임이라고 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알고 있던 바울은 방언이 교회 전체에 덕을 세우는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특별히 공예배시 방언을 자제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덕을 위해 방언은 홀로 있을 때 사용하며, 만일 교회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려면 통역자를 두고 ‘질서 있게’ 기도하라고 권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방언의 은사만이 최고라 생각하며 이 한가지 은사만을 고집스럽게 사모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그보다 더 큰 은사가 있다고 말하며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 아무리 천사의 말과 같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방언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꽹과리 소리와 같을 뿐 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활용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사랑’이어야 한다고 강조 했습니다.
방언 받기만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특별히 강조하며 ‘예언하는 것’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1절을 봅시다.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왜 바울은 그 많은 은사 중에 ‘예언’을 강조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방언이 분명 유익이 있고 하나님의 은사가 맞지만, 이 은사가 고린도교회를 분열 시키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마음을 닫게 하는 등 덕을 세우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에 충분한 은사이기 때문 입니다. 방언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언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은사 입니다. 이러한 예언의 은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유익과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방언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2절을 봅시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에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 뜻을 알 수 없고, 타인에게는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다릅니다. 3절 봅시다.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예언은 교인이나 불신자나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해지기 때문에 그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고,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교회 전체에 얼마나 큰 덕이 되겠습니까? 예언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상처받고 여러운 처지에 놓인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하고 위로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언과 예언의 차이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4-5절 입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방언 자체를 부인해서가 아닙니다. 방언도 분명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입니다. 통역의 은사를 거쳐서 공동체 앞에서 방언의 옳다함을 인정 받을 수 있고, 해석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 혼자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으므로 방언으로 기도해도 개인의 영에만 유익합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주어짐으로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은 방언이 가진 한계를 가르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6절을 한 번 보십시오. 제가 다른 번역본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고전 14:6) 고린도교회 형제 여러분,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방언만 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말성경) 7절부터 9절 말씀도 한 번 눈으로 보십시오. “(고전 14:7) 피리나 수금같이 생명이 없는 악기가 소리를 낼 때도 각기 뚜렷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수금을 타는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고전 14:8) 또 나팔이 불분명한 소리를 낸다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겠습니까 (고전 14:9) 이와 같이 여러분도 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말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격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만일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찾아가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방언으로만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만 가르친다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교인들에게 진리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방언보다는 예언을 통해 하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11절을 봅시다. “(고전 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여기서 ‘야만’이라는 말의 뜻은 ‘이방인’ 혹은 ‘외국인’이란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방언으로만 이야기하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사이나 다름 없어진다는 뜻 입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양한 은사 중에 방언만을 고집하지 말고, 교회 전체에 덕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전 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개인의 실리추구가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방언과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신비한 은사를 사모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끼치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활용하기를 사모하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교회에 진리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을 바르게 활용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이 되며 덕을 세우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