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5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린도전서 12장 27-31절)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우리 몸에 눈이나 입이나 심장 같이 중요한 부분 하나만 사라져도 생존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수 있는 교회 안에서 다양한 직분을 맡고 있는 성도들은 서로 꼭 필요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엄지 손가락만 있다고 나머지 손가락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연약해 보이는 약지 손가락도 막상 없으면, 물건 드는 힘이 현저히 약해 집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몸이고,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직분들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목사도 있고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강도사님, 전도사님도 있습니다. 이러한 직책은 교회 내에 각각 맡고 있는 그 사역과 책임에 따라 구분 됩니다. 마치 우리 몸에서 보는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을 눈이라 부르고, 말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을 입이라 부르듯이,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사역과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분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에는 어떤 직임들이 있었을까요? 2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세우신 직임을 보니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중에 첫째가 ‘사도’ 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 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 사역을 위임 맡은 자들 입니다. 우리가 ‘사도’라 하면 주로 예수님의 12제자를 칭하는 또 다른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전파의 사명을 위임 받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이 12명 외에도 또 다른 사도들이 등장합니다. 맛디아, 바울, 바나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실라, 아볼로 등 다른 사도들도 존재 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사도라는 직분은 초대 교회 시대에만 한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입니다. 요즘 이단이나 사이비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비성경적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한다고 해서 위축되지 마시고, 오히려 거짓되고 악한 세력임을 깨닫고 멀리해야 합니다.
둘째로,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들 입니다. 각 지역에 생겨난 교회에서 사도들에 의해 권위을 위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믿음으로 이끌었던 사람들 입니다. 특별히 이들은 예언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교사’입니다. 이 사람들 역시 말씀 사역을 담당하던 자들로, 성도들에게 성경의 의미를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침으로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 이와 같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도, 선지자, 교사는 모두 말씀에 연관되어 있는 사역으로 교회 안에서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 다음부터 나오는 사역들은 은사가 부각됩니다. ‘능력’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병 고치는 은사’는 말 그대로 아픈 자들을 치유하는 사역과 관련 있습니다. ‘서로 돕는 것’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역할 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오늘날 교회 일을 관장하는 장로의 임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방언을 우월시 했는데, 그래서인지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목록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어떤 황홀경에 빠지거나 두드러지는 외적인 현상에 집중하곤 했는데, 바울은 오히려 사도, 선지자, 교사들이 행하는 말씀의 선포를 우선시 함으로써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든든하게 세워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들을 필요로 합니다. 29-30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우리 나라 옛날 속담에 “몸이 열 냥이면 눈은 아홉 냥”이라고 했습니다. 그 만큼 우리 몸 중에서 눈이 귀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눈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눈이 천개가 있어도 귀가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입이 없으면 말할 수도 없고, 노래도 못하고, 밥도 못 먹습니다. 코가 없어 상쾌한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숨도 못 쉽니다. 만일 우리 몸에 눈만 있다면 몸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도도, 선지자도, 교사도 물론 중요한 직책이고 직임입니다만, 모든 성도가 다 똑같은 은사만 가지고 있다면 교회의 대부분의 기능이 마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은사를 가지고 우월한 마음이나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나 한 사람 가지고 교회는 결코 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다른 지체와 함께 세워가는 유기적 공동체 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가 가장 큰 선물인줄로 알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겸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사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은사 중에 더 뛰어난 은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은사를 뽐내기도 하고, 자신 보다 하등한 은사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소유한 은사의 종류를 통해 교회 안에 서열을 정하려고 했던 것이죠. 특히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방언의 은사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사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바울이 볼 때 정말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울 때 필요한 것이며, 그러하기에 누가 더 뛰어난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와 같이 높은 등급의 은사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미련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수준에 맞추어, 이들에게 가장 뛰어난 은사, 그들이 사모하는 방언의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있다고 말하며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 31절 입니다.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눈치가 빠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렇게 사도 바울이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크고 좋은 은사를 보여주겠다!”하고 말한 후에 고린도전서 13장에 가서 어떤 은사를 소개합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즉 바울은 ‘방언이 제일 높은 은사다’라고 생각했던 고린도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의 은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크게 일침을 놓는 것입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것은 남은 가지고 있으나 나에겐 없는 은사를 시기하거나, 반대로 나만 가지고 있는 은사를 뽐내며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사랑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덕과 유익이 되는 큰 은사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가시적이고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은사’를 사모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유익과 덕을 세울 수 있는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가장 우월해 보이는 은사들을 갖고자 열망해 왔습니다. 그들의 기준은 그 은사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얼마나 대중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기준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치며, ‘내가 가진 은사로 교회에 얼마나 덕을 끼치고 있는가?’하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은사를 바라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이 가진 은사가 진정한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 덕을 세우고, 형제를 위하는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이 가진 은사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모두다 소중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형제 사랑과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그 사람이 가장 큰 은사를 가진 사람이며, 가장 큰 영적 거인 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은사를 통해 교회에 덕을 끼치며 형제 자매를 섬기며 살아가는 큰 영적 거목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