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고전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전 11: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전 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고전 11: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여러 교회를 방문해 보면 깨닫는 사실은 교회마다 예배의 모습이나 순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강조하는가 하면, 또 다른 교회에서는 생기 있고,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마다 예배에 대한 인식도 다를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예배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죠. 이런 다양한 예배 형식 속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예배의 모습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는 1세기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제국 곳곳에서 각 지역마다 세워진 교회는 저마다 구성원이 달랐고, 교회가 자리잡은 지역의 문화와 언어도 서로 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마다 지키고 있는 예배의 모습이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역시 고린도교회만의 예배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성도들은 ‘과연 이렇게 예배 드리는 것이 맞는가?’, ‘이러한 것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갖게 되었고,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공적 예배에 있어 수정 및 보완해야 할 세 가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세가지중 첫번째가 예배시 여성의 예배포 착용 문제입니다. 두번째는 성찬 시 빈부간 차별로 인한 위화감 조성 문제 입니다. 세번째는 영적 은사의 조화롭지 못한 사용으로 인한 교회 안의 무질서 입니다.
오늘 이 세가지 주제 중 우리는 첫 번째 ‘여성의 예배포 착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주제에 대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적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여인들이 집 밖으로 외출하거나 공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 반드시 머리에 수건을 썼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당시 그리스 문화에서 비롯된 남성우월주의 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고린도에서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표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여성은 창기를 의미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화 속에서 고린도교회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에 소속된 일단의 여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근거로 자신들은 더 이상 이와 같은 사회적 관습에 속박당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공적 예배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공적 예배 때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느냐?’ 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생각할 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예배 때 수건 쓰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쓰고, 벗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벗으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이 당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을 부도덕하게 여기는 사회 문화 속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공적 예배에 참여 하는 것은 불신자들에게는 교회가 마치 부도덕한 자들의 집합소로 오인하게 만들 요소가 다분히 크기 때문 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관습에 반하여 공적인 예배 중에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여성들로 인해 교회 안에서도 시험에 드는 성도들도 생겨났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유교적 시선으로 보면 점잖치 않은 사람으로 여겨질 옷차람이 있기 마련 입니다. 물론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만을 강조한 나머지 자신이 속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잊은 채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자유도 분명 좋은 가치이지만, 배려가 없는 자유는 덕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여성이 예배시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적인 해석과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문화적인 차원에서 동시에 다루고자 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질서를 이야기 합니다. 3절 입니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남성 우월론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며, 남녀는 서로가 필요한 상호의존적 존재이고, 서로 보완적인 관계임을 명확하게 제시 합니다. 동시에 바울은 남녀 사이에 인격적인 면에서는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와 더불어 바울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인정 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머리됨’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의 조력자(돕는 배필)로 지음 받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3절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머리’란 ‘우두머리’를 의미합니다. 비록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본질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나, 영적 질서의 차원에서 남녀 사이에 반드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고린도에서는 노예나 여성은 공적인 자리에 머리에 수건을 썼는데, 이는 권위에 순복한다는 표시였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고린도교회의 여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참 자유를 내세우며 예배포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교회 안에 혼란을 가져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공예배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교회가 무질서하고, 성적으로 부도덕한 집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여성이 예배 시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지금 바울이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며 “여성은 교회의 공적 예배 때 머리에 수건을 쓰십시오.”하고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당시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함을 의미하고, 더 이상 순복하지 않겠다는 불순종의 의미로써 아내가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문화 속에서 여성도들이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자각만을 가지고, 공적 예배시 예배포 착용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고전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바울은 공식 예배에 참석하면서 여성이 예배포를 쓰지 않는 것은 ‘머리를 까까머리로 민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했습니다. 머리 미는 것을 여성의 수치며, 모욕으로 여겼던 이 당시 문화에서 나온 표현으로, 예배포를 쓰지 않는 것은 삭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당시 고린도가 속한 그리스의 사회적 문화적 이해 없이 ‘오늘날에도 교회 공예배 시 여성들이 수건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고린도에 한정하여 당시 사회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교회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교회 안 질서를 지키기 위한 권면 입니다. 따라서 여성이 공예배시 머리에 수건을 써야한다는 이 내용이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에 있는 교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천주교는 지금도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미사시 여성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가 있기에 머리에 예배포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개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자유를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교회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를 실행함으로써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도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도덕한 자로 여겨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결국 ‘예배 시 복장’에 대한 주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기 보단, 교회의 질서를 세우고 상대방을 위해 배려하고 절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무례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 속에서도 교회의 질서와 덕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절제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진정 성숙한 사람 입니다. 이와 같이 나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며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겸손하게 덕을 세우며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