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린도’라는 도시는 성적으로 매우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는 신전에서는 1000여명의 여사제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과 성관계를 맺음으로서 신을 섬긴다는 이상하고 문란한 풍속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태양의 신이라 불려진 ‘아폴로’의 신전 동성애를 하도록 어린 남자 아이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답게 로마 제국 곳곳에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왕래 했으며, 그로 인해 개방적인 문화는 성적 문란함과 방탕함으로 도시를 채웠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세워진 곳이 바로 ‘고린도교회’ 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심각한 성적 죄악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까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간의 다툼과 분쟁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바울은 드디어 5장에서 음행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절 입니다.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던 바울에게 찾아온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성적 죄악을 바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음행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뜬 소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심지어 음란하다고 여겨지던 고린도 사람들도 저지르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근친상간’의 성적 죄악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한 음행으로 더러워져 있던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까지 이러한 교회의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으니, 고린도교회는 이미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보다도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모범적인 삶을 살기는커녕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지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1절에 사용된 ‘음행’이란 단어는 ‘포르네이아’란 단어 입니다. 영어의 ‘포르노’란 단어가 여기서 나왔는데요 ‘돈을 주고 성적 관계를 맺는 매춘 행위’를 의미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적 범죄마저 만연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2절을 봅시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의 성도들이 이러한 더러운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여전히 서로 자신이 더 경건하고 더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 싸울 수 있는지 통탄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이러한 음행을 저지른 자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 “그런 음행의 죄를 저지른 자들을 교회 가운데서 쫓아냈어야 하지 않았느냐?”하고 고린도교회를 책망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자세 읽어보면 고린도교회의 음행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단 한 번 실수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러한 음행의 죄악에 빠진 형제들을 징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안일한 고린도교회의 처신을 책망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형제 자매가 성적 죄악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결국 그 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죠.
3절 봅시다.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낼 때 비록 자신이 몸으로는 에베소에 있어 멀리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고린도교회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그와 같이 음행을 행한 사람들을 이미 심판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음행하는 자, 특별히 근친상간의 죄를 지은 자를 쫓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란 말은, 교회에서 출교시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인데, 음행으로 주님의 몸을 훼손한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확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음행을 행하는 자들을 수수 방관했습니다. 음행이 분명 하나님 보실 때 큰 범죄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와 같이 음행의 죄를 지은 자들은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요하다면, 공예배의 참석과 성찬식 참여에 금지시켜야 하는 것이죠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3대 표지가 무엇입니까?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행, 권징의 실행 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말씀에 불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치리하는 기능이 있어야지만 참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은혜로 눈 감고 넘어갑시다.” 사실 아무런 치리 없이 수수방관 하는 게 가장 쉬운 선택 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주님의 몸인 교회를 무너뜨리는 결정 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음행을 행한 자들에게는 출교와 같은 징계를 통해서 오히려 그들의 행실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이 원했던 것은 음행하는 자들이 출교 당하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육신은 멸한다’는 말씀에서 ‘육신’은 우리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짓는 ‘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출교 당한 사람이 잠시 동안 육체적 고통을 겪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를 멸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주 예수의 날”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심판의 날에 그의 영혼이 구원 받게 되기를 소망 했습니다. 즉 바울은 음행의 죄를 지은 자를 치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거룩함을 훼손시키지 않는 길이며 동시에 음행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도록 하는 길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이와 같이 심각한 음행의 죄로부터 훼손된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권징을 시행하라고 촉구 했습니다. 즉 음행의 죄를 지은 자들을 출교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 입니다.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은 빵 전체를 부풀리게 하는데 쓰이는 ‘이스트’(효모)를 말합니다. 빵을 만들 때 밀가루 4컵 당 누룩은 티스푼으로 2스푼 정도 넣습니다. 비록 적은 양의 누룩이지만 빵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적은 양의 누룩이 온 반죽 덩어리에 퍼지게 되는 것과 같이, 아무리 소수의 음행의 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방관하면, 그들의 죄가 교회 전체를 흔들고 거룩함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누룩을 제거함 같이 부당한 음행을 행한 자들을 교회 안에서 출교시키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7절에 말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다” 이 말은 교회는 죄가 없는 거룩한 주님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룩이 없고 순전하고 거룩한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누룩 즉 모든 종류의 죄악을 제거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빠져나오는 밤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 가운데 모든 누룩을 제거했습니다. 이처럼 유월절은 ‘누룩이 없는 빵’(무교병)을 먹은 절기이기 때문에, 유월절을 다른 말로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에서 누룩을 제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회중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거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유월절 희생양이 되셨으니, 죄악을 내어 버리라는 의미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며 누룩 없는 빵, 무교병을 먹었던 것과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들, 분쟁과 교만, 음행의 모든 죄악들을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살아가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어떠한 누룩 즉 어떠한 죄라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건만 어찌 우리가 또 다시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아가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제거해야 하는 누룩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난 너가 그 행위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하고 말씀하시는 삶의 모습은 없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 여러분, 주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세상의 모든 누룩 즉 죄악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