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7 하나님의 지혜에 귀 기울이기 (고린도전서 2장 6-16절)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는 고전 중에 고전 입니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동과 어른이 되고 나서 책을 통해 느끼게 되는 감동이 달라집니다. 책 [어린 왕자]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어록들을 남겼는데요. 그 중 하나는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해주는 다음과 같은 말 입니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렸을 때 책을 읽을 때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책 속의 이 글귀가 마음 속에 선명하게 와 닿게 됩니다.
어리숙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큰 성과 같은 집, 고급 자동차, 명품 가방, 돈, 화려한 옷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바람이 우리 손등을 스치며 지나가듯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 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무엇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가를 깨닫는 과정은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복된 깨달음이죠. 바울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는 은혜야말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일까요? 아니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이 볼 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자신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왔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6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여기서 ‘온전한 자’란 말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상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단순히 죄수의 죽음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 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세상의 지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관원의 지혜’라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의 지혜’라는 말 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 사람들이 신봉하는 주먹의 원리, 힘의 원리, 돈의 원리를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을 전했습니까? 7절 입니다.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비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전했다고 말합니다. 이 지혜는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만세 전에, 즉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획해 놓으셨던 비밀 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도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8절 입니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만일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세상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저렇게 예수님을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잡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9절 입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고, 귀로도 들었으나 그것이 진정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마음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는 말 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다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는 사람들 입니다. 10절 입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는 유일한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12절 입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건임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육체에 속한 사람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로마 법정에서 극악무도한 죄수를 죽이는 사형 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사렛 죄수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미련한 일로 보였습니다. “어떻게 저 죄수가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느냐?”라고 그들은 반문했습니다. 14절 입니다. “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미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기독교를 미친 사람들의 모임으로 취급하고 핍박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바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한 사건이라는 것을 똑똑하게 볼 수 있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 세상에 문제가 무엇인지, 이 세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똑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일에 무지합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은 신령한 자 즉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16절을 봅시다. “(고전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계획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16절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표현은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우리가 성령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으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은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축복이요, 가장 큰 은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이 크신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와 찬양을 돌리며, 성령과 함께 이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 끝까지 전하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