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 시간이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지난 날 밤에 체포 당하시고 밤새 심문을 받고 날이 밝은 것이죠. 이처럼 지난 밤 한 숨도 주무시지 못한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쉴 틈도 없이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기 위해 그의 관저로 끌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끌고 가던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이방인이었기에 그의 관저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하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이제 몇일 후면 유월절 입니다. 만일 이방인과의 접촉으로 인해 부정하게 되면 유월절 종교 행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과 식사도 함께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빌라도의 관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온 자들은,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 관정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 관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온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재정하신 유월절의 정결 규례는 지키기 위해서 관정 밖에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른 새벽 관정 밖으로 빌라도가 직접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빌라도는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고발한 이유를 묻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악자라고 고발 했습니다. 30절 말씀을 한 번 봅시다. “(요 18: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여기서 사용된 ‘행악자’란 말은 정치적 의미가 들어간 단어로, 예수님이 로마 정부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반역자라는 뜻 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민란을 일으킨 죄수를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넘기기 위해서 예수님을 붙들고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사건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빌라도는 자신이 직접 재판을 진행하려 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자치적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라고 대답 했습니다.
물론 빌라도의 말대로 유대인들이 자치적으로 예수님을 처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데리고 온 숨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치적으로 재판은 가능하지만 죄수에 대한 사형 결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가 사형 판결을 받고 죽기를 바랬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총독 빌라도 앞으로 데리고 온 것이죠. 31절의 내용을 봅시다. “(요 18: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유대인의 법대로 자치적으로 재판하라고 말한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대답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유대인들이 이렇게 대답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 말씀을 봅시다. “(요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예언 하셨었을까요? 요한복음 12장 32-33절 말씀을 보면, “(요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 12: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요한복음 12장 32절에 기록된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란 말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총독 빌라도는 그제서야 유대인들이 이 죄수의 사형을 바라고 자신에게 예수를 데리고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정말 예수님이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지었는지 심문하기 위해 관정에 들어가 재판을 시작하게 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은 질문들을 봅시다. 33절 입니다. “(요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을 고발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이 당시 유대는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써 유일한 왕은 로마의 황제가 통치를 허락한 헤롯 왕 밖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 행위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어본 빌라도의 질문은 사안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쉽게 바꾸어 보면, “네가 로마 황제를 반역하고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하느냐?”하고 물어본 것이죠.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34절에서 봅시다. “(요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이 순전히 스스로 하는 질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 즉 유대인들의 고발한 말을 듣고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하는 질문인지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반문에 빌라도는 자신의 질문이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듯 또 다시 말했습니다. 35절 입니다. “(요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캐물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 생각하는가?’ 빌라도는 예수님의 숨은 의도를 알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길 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줄여야 할 정치범이라 고발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정말 로마 제국을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인지 알고 싶어 했던 것이죠.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대로 자신이 왕이라고 인정 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진리를 전하기 위해 오셨고, 진리에 속한 자는 자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심문 결과 예수님은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것이 종교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빌라도는 관정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자신은 예수를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고 대답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한 빌라도의 말과 같이 결국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죠.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공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겉으로는 공의를 외쳤으나, 속으로는 자신들의 거짓과 죄악을 위해 살고자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이방인 총독 빌라도가 보아도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유대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의인을 정죄하는 유대인들은 얼마나 악한 자들 입니까? 겉으로는 공의와 거룩함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거짓과 죄악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 보실 때 인정 받을 수 없는 삶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악입니다. 신앙인은 외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행위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 속 은밀한 동기와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외식과 비겁한 마음과 생각들을 불태워 주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