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8 내 뜻보다 크신 하나님의 계획 (요한복음 18장 1-11절)

요한복음 18장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 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19장까지 이어지며,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체포 되시고 안나스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 입니다. 둘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 입니다.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 당하시고 장사 지내는 장면 입니다. 오늘은 이 세 장면 중 첫번째 장면인 예수님께서 체포 당하시는 장면 입니다.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평상시 기도하던 동산으로 향하셨습니다. 이 장소는 배신자 가룟 유다도 알고 있는 장소 였습니다. 예수를 팔기로 약속한 가룟 유다는 로마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내준 하속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횃불과 병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당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향하여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무리는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 “우리는 나사렛 예수를 찾으로 왔소”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하고 대답 하셨습니다. 이에 자기들 눈 앞에 있는 분이 나사렛 예수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무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 서다 땅바닥에 넘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그들을 향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무리는 또 다시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왔다고 대답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두 번씩이나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을까요? 그것은 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온 목적이 제자들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을 붙잡기 위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무리가 두 번씩이나 “우리는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왔소.”하고 말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들이 잡으려 하는 자라고 밝히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제자들은 하나도 붙잡지 말고 이 자리를 떠나가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이 붙잡히는 위기의 현장에서도 제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자신을 잡으로 온 자들로부터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곳을 떠나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하라고 말씀 하신 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다고 기록합니다. 9절 말씀을 봅시다. “(요 18: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우리가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양을 돌보는 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삯꾼 입니다. 삯꾼은 이리가 양을 잡아 먹으로 오는 것을 보면, 자신의 신변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그래서 결국 이리는 양들을 물어가고 양을 죽게 만듭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삯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양 때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양을 돌보는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바로 ‘목자’ 입니다. 양을 잡아 먹기 위해 이리가 떼거리로 몰려와도, 곰과 사자가 와도 목자는 끝까지 양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참으로 선한 목자 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자신을 잡으로 온 무리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보다 제자들을 지키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계신 예수님을 보며, 우리들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사랑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기 마련 입니다. 평상시에는 사랑이 넘치는 것 같다가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먼저 보호하려는 것이 사람의 본능 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 하는 무리들 앞에서도 변함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그 다음 장면을 봅시다.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횃불과 무기를 손에 들고 온 무리를 본 베드로는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예수님께서 로마군사들과 무리들에게 잡히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는 마침 가지고 있던 검 한자루를 들고 휘둘렀습니다. 이에 그날 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 중 한 사람의 귀가 잘리고 말았습니다. 사복음서 중 유일하게 요한복음만이 귀가 베인 자의 정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이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기에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가능했던 것이죠.
예수님은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키러 애를 쓰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검을 다시 칼집에 넣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요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의 신변이나 안전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최우선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무리에게 잡혀가면 십자가에 달려 모진 고통을 당하며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뜻임을 아시기에 예수님은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예수님과 같이 우리를 사랑한 분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반 당하는 그 현장에서도 나머지 제자들을 끝까지 돌보셨고, 마지막까지도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로 선택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위대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 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희생의 대가로 얻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예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