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반 동안,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빛과 소망 같은 존재 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 하셨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까요? 제자들은 깊은 근심과 두려움에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이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벌어질 것을 다 알고 성경을 보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며 도대체 예수님께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고자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20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무리에게 붙잡으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던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리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의 근심은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놀랍고 큰 기쁨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 때 제자들이 누리게 될 기쁨을 해산 한 여인의 기쁨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 하셨습니다. 21절 입니다. “(요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하여 예수님은 잠시 동안 제자들을 떠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제자들 곁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이 얻게 될 놀라운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 입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 묻고 싶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후에 제자들이 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격려해 주신 것이죠.
자,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한 가지 해 주셨습니다. 23-24절, 두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오늘 예수님의 약속을 믿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 입니까? 근심하고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예수님과 단절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떨어져 영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가장 큰 근심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받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은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시고, 또한 그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주신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또 어느 누가 두렵겠습니까?
오늘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약속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절) 이 말씀에서 주님의 약속은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어떤 이들은 세속적 욕심, 육체적 탐심에서 비롯된 허황된 기도도 들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본문 말씀을 오용하며, 부귀영화를 꿈꾸며 돈, 명예, 권력을 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이든지” 뒤에 나오는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는 말씀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기도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기도, 예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도,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 입니다.
부활 후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부재 가운데서도 여전히 영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함으로써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기도함 가운데 주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비록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인해 더 이상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할 수는 없으나, 기도하는 한 예수님의 임재를 계속해서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경험을 할수록 세상 속에서 그들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질 것을 아셨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간구하는 자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지친 자에게 힘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미련한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적 부재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서 말씀 하시며 ‘기도의 응답’이 바로 그 비결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근심 바이러스, 두려움 바이러스도 퍼지고 있는 시기 입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내일에 대한 염려, 경제적 근심, 앞날에 대한 두려움들이 우리 마음을 잠식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기도의 능력’을 말씀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여전히 동일하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의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어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기쁨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한 기쁨과 능력 부어주심의 은혜를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