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그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이라 전해지는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발을 일일이 닦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동일 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으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마음으로 몹시 괴로워하며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우리 한글 성경에는 ‘나를 팔리라’고 직접적으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하리라”는 의미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열두 명의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처다 보며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라 다닌 사람들 입니다.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 해온, 또 하나의 가족과 도 같은 이 무리 중에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배신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제자들에게도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22절을 보면 “(요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고 기로함으로써 제자들은 과연 예수님이 우리 중 누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서로 의심하고 있는 분위기를 잘 설명해 줍니다.
본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 곁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사도 요한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시는지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이에 25절에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26절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요 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오늘 이 장면을 읽는 우리들은 이 당시 식사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빵을 먹을 때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올리브 기름을 넓적한 그릇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올리브 기름에 식초를 조금 타서 섞고, 빵을 그 소스에 찍어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내가 이 빵 한 조각을 이 올리브 기름에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 빵 한 조각을 적셔서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한 번 이 본문을 우리가 그 날 제 3자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논리적으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첫째, 예수님은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사람이 다름 아니라 자신이 빵을 찍어 주는 사람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빵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팔 사람입니까? ‘가룟 유다’ 입니다. 이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말하기를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가룟 유다에게 빵을 주셨는지 알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8-29절 말씀을 봅시다. “(요 13: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요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제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빵을 주셨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가룟 유다가 평상시에 제자들만 따로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 섞인 이야기를 자주 했거나, 그의 스승을 모욕했다면 제자들은 속으로 ‘그래, 가룟 유다는 평상시에도 예수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으니까. 저 사람은 충분히 우리 스승을 배신할 수 있어.”하고 생각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나머지 11명의 제자 중 단 한 사람도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결코 그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거에요. 가룟 유다는 평상시 결코 예수님 배신할 것 같은 제자는 아니었던 것이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교훈을 받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잘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얼마든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아니할 가룟 유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중요합니다. 가룟 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평상시 좋을 때는 주님 따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을 배신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상시에는 세상과 다른 것 같이 행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세상 사람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 입니다. 오히려 평상시에는 세상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우리의 믿음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늘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 2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빵을 찍어 유다에게 주시며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는 것으로 오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가 돈 관리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나가서 앞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오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잘못 이해 했습니다. 유월절 저녁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당시의 관습으로 인해, 어떤 제자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물건을 사오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은 지금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 배신자라는 사실을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이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빵 조각을 찍어 가룟 유다에게 주시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30절 말씀을 봅시다. “(요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떡 조각을 받은 후, 드디어 예수님을 팔아 넘길 계획을 실행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목소리, 그리고 다른 제자들의 목소리는 들립니다만, 가룟 유다의 목소리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은밀하게 악을 도모하는 죄인의 음흉함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에 등을 돌렸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예수님만큼 가룟 유다를 사랑하신 분이 있을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에도 함께 했고, 예수님은 세족식을 거행하며 가룟 유다의 발까지도 씻어 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같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고, 자신의 뜻이 관찰되지 않자, 예수님을 배반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고,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가시기 위해 가룟 유다에게 빵을 찍어 주시며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난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닌 가룟 유다도 한 순간에 무너져 예수님을 등 지고 돌아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을 끝까지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님께 받은 은혜를 날마다 묵상합시다.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살아갑시다. 사망과 어둠을 이기신 빛이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만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방법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고통 중에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