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은 바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을 보면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의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배신할 가룟 유다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을 찾아가 자신이 예수를 넘겨줄 것을 제안하며 은 30냥을 받은 사람 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나에 대해서 우호적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뒤에서 욕하고. 미워하고 끝내는 배신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배신자 가룟 유다는 성찬식도, 세족식도 다 참여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게획을 다 아시고도 그 제자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세상의 미움까지도 사랑으로 품어내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시고 그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매우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은 집안의 가장 천하고 낮은 하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천하고 낮은 일을 하시다니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깜짝 놀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제 발도 씻겨 주려 하십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으면 씻겼지, 어찌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을 수 있는가?’하고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자원하여 제자들의 종이 되신 것이죠.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훗날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베드로는 강력하게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주님. 제 발을 주님께 맡겨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그러자 요한복음 13장 8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를 씻겨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자 또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여, 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10절 말씀 입니다. “베드로,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신 십자가의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세족식 자체가 죄를 씻는 과정은 아닙니다. 세족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는 속죄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섬김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이 그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예수님 자신과 베드로가 아무런 상관없는 관계가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씻음 바 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됩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목욕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속죄를 가리키고, 발을 씻는 것은 예수를 믿은 후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짓는 죄들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그들의 영혼의 허물까지 안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들의 모든 연약함을 품어 주셨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밤에 발을 씻어 주신 제자들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그 어느 누구 하나 이 세상 기준으로 특별나게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일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면, 역사 속에서 사라질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 중 마태는 당시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직업인 세리 출신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결핍되어 있는 이와 같은 제자들을 품어 주시고, 영혼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연약함을 허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약함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 하시고, 친히 품고 함께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그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위대한 사랑이야말로 교회가 가져야 할 사랑의 태도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앉으시고 12절에 이렇게 질문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긴 뜻을 알겠느냐?”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세족식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 13:13) 너희는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요 13:14) 이처럼 너희의 주님이며 선생님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옳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는 15절에 있습니다.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을 섬기심으로, 자신의 제자들도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세족식은 제자들을 위한 ‘본보기’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분명 세상은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고 가난한 자가 부자를 섬기고, 어린 자가 나이 많은 자를 섬기고, 직원이 자신의 고용주를 섬깁니다. 힘 없는 자가 힘 있는 자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분명 이 세상의 원리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순서를 뒤집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제자들이 오히려 힘 없고, 연약하고, 천한 자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자신의 삶을 나눠주고 헌신하는 삶이 복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리더 혹은 지도자나 직분자일수록 다른 사람들을 더 열심히 섬기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종의 위치에 서서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 입니다. 섬김 받고 높임 받으려 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오시고 친히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더 겸손히 종의 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일 때, 교회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섬김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은 먼저 행동으로 본을 보이신 후에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섬김의 모습을 본받아 더 많은 이들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