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7 아이성의 패배와 아간의 범죄 (여호수아 7장 1-26절)

아장아장 기어 다니는 어린 아기가 걷기 위해서는 2천번 이상 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넘어짐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하며 당당하게 걸을 수도 있고, 때로는 전속력으로 달릴 수도 있게 됩니다. 어린 아기가 수천 번 넘어지며 걷는 것을 배우듯이,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런 실패 가운데 인생은 우리에게 경험을 주고 지혜를 가져다 줍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좋은 선택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나쁜 선택에서 나온다.” 결국 우리는 인생의 실수를 통해서도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셈이죠. 그리하여 훗날 비슷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처신하여 더 나은 상황이 되도록 행동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삶의 지혜를 배운 사람 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현장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성경에 기록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무엇이 지혜로운 것이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위대한 스승이란 말이 있듯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어떠한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가 가져다 준 열기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아이성 전투에서 이들은 쓰라린 실패의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강하고 견고한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에 비해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먼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아이성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정탐해 보니 아이성을 정복하는데 드는 병력은 대략 2-3천 명 정도면 충분해 보였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60만명이나 되는 온 백성이 달려든데 비해 아이성은 그에 비하면 매우 소수의 병력이 필요했다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아이성 정복이 여리고성 정복에 비하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비교적 쉬운 전투가 될 수 있었다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3천명이 가서 참패를 경험하고 오게 된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과 전투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아이성 전투에 앞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의 승리에 도취하여, “이 정도는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지”하고 교만한 마음이 이들 가운데 있었다는 결정적은 증거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큰 일에는 크게 기도하고, 작은 일에는 작게 기도한다 할지라도 모든 일에 기도의 습관을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기도 잘 안하다가 크고 어려운 일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 속에서 평범하고 작은 일 가운데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일꾼들의 공통점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도, 목동으로 양을 돌보는 시절에도 하나님과 함께 교제 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가 되기 전,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일 때도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큰 일에만, 내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만 하나님을 찾지 마시고, 작은 일에도 주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평범해 보이는 일에도 주님을 초청하십시오.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 된 영성의 자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는 하나님의 궤가 함께 갔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여리고 성과의 전쟁에서 이들이 승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아이성 전투는 어떻습니까? 법궤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아무런 지혜도 묻지도 않고 갔습니다. 만일 이들이 전쟁 전에 하나님께 묻기라도 했다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말리시지 않았을까요? “가지 말아라! 먼저 너희 가운데 범죄한 자를 찾아내라!” 하나님께서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도록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도, 지혜도 구하지 않고 자기 힘만 믿고 아이성을 점령하러 떠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배한 또 하나의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우리 일상에 초대하고 계십니까? 기도는 밥 먹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 가사를 한 번 기억하십시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 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앞이 캄캄할 때만, 뭔가 삶에 큰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 합니다. 그러나 찬송가의 가사대로 기도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내 가 살아갈 하루의 모든 순간들을 붙잡아 주시도록 간구하는 것 입니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 참 기도 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일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드리십시오. 저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에 가면 수업 전 책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가게에 가면 기계를 작동하기 전에,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회사에 가서 컴퓨터를 키기 전에, 직장 동료와 회의를 하기 전에, 시간이 안 되면 짧게라도 먼저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기도한 하루와 기도하지 못한 하루는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없어도 된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하는 자세로 기도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친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누가 하나님을 만납니까?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기도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오늘 하루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주의해야 할 것 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언제 하나님이 제 인생에서 필요 없다고 했습니까?’ 실제로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도하지 않고 하루를 사는 것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필요없다)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성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이루어 가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나 스스로는) 약하다고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 때가 가장 강한 때 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행적을 살펴보면 어떤 일을 앞두고 항상 하나님께 묻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성과의 전쟁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아이성과의 전쟁을 치룬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시기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만일 여호수아가 전쟁을 치루기 전, 전쟁을 앞두고 미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패배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엎드리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소 잃고 기도하지 마시고. 소 잃기 전에 먼저 기도 하시길 바랍니다. 바쁘다고 핑계 대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업의 실패, 관계의 실패,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라도 그 사람이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안 바쁘게 만드실 것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다가 매 맞고 기도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매 맞고 기도하지 마시고, 잘 될 때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일이 잘되고,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바빠질수록 더욱 더 기도가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없는 삶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 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패배한 여호수아의 처절한 모습을 보십시오. “(수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수 7:7)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나이다” 여기 보면 여호수아가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인생에서 넘어지면 그것이 다 하나님 탓이라고 생각하며,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께서 찾고, 하나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 실패한 원인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사람을 달에 보내며 나사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뿐 입니다.” 물론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최선을 다 해야죠.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이 담고 있는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살아도, 언제나 기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한 또 하나의 원인이 바로 ‘탐심’ 입니다. 아간의 범죄는 한 마디로 탐심이 일으키신 사건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여리고 전쟁을 수행하면서 여리고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의 시키며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은 어느 것이라도 취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 경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탈취물을 훔쳐 버렸습니다. 그가 훔친 물품을 보면, 한 순간의 욕심에 의한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아예 훔칠 작정을 하고 도적질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보면 아간도 자신이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야할 물건을 취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탐심이 죄를 가지고 왔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 기억나십니까? 그녀는 선악과를 보고 탐심이 생겨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사건도 동일한 패턴 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간은 여리고 성의 탈취물을 바라보다가 욕심이 들어왔습니다. 하와는 탐스럽게 익은 선악과를 주목해서 보느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옛말에 ‘견물생심’이라고, 인간은 살면서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마음에 탐심을 물리치십시오. 만일 내가 지금 무언가를 소유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있다면, 나는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현재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만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만 가득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만 비교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사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은 불행의 지름길 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늘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반대로 여러분에게만 주신 은혜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 비교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자족함을 배우십시오.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십시오. 유다서 1장 16절 말씀을 봅시다. “(유 1: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죄인들 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원망하고 불만을 갖고 사는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불만은 지옥에 이르는 죄 입니다.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준 교훈을 한 번 살펴봅시다. “(딤전 6: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감사하며 만족하는 태도로 살아갈 것을 권면 합니다. 혹시 우리들의 마음에도 아간의 마음처럼 탐심이 가득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것을 훔쳤습니까?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요 도적질 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남은 것은 나머지 90%는 자기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기 위해 드리는 것 입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것을 훔쳤습니다. 만일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역시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제 소유를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하나님이 제게 맡겨 주신 주님의 것을 통해 어떻게 주님의 나라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묻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처음부터 ‘나의 돈’(my money), ‘나의 소유’(my possess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 (God’s money), ‘하나님의 소유’(God’s possession)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십시오. 시편 62편 10절 말씀을 우리말성경 번역본으로 읽겠습니다. “(시 62:10)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힘으로 삼지 말고 남의 것을 훔치는 헛된 욕망을 품지 말라. 너희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탐심을 경계하라고 권면 합니다. 아간의 범죄는 그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죄였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의 마음 속 탐심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도 몰살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탐심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잡아 먹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물질은 이용의 대상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진리를 잊지 마십시오. 탐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물질이 사랑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이용의 대상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삶의 끝은 패망과 죽음뿐 입니다. 아간의 탐심의 끝은 돌에 맞아 죽고,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결말이었습니다. 아간이 죽은 장소가 바로 구약성경에서 저주를 일컬을 때 사용된 ‘아골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아골 골짜기의 의미는 ‘괴로움의 골짜기’, ‘근심의 골짜기’ 입니다. 탐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국 괴로움과 근심으로 자기를 찌를 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항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가면 가방 깊숙이 꽁꽁 숨겨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눈은 엑스레이보다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 깊숙이 숨어 있는 것들까지도 다 꿰뚫어 보십니다. 혹시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탐심은 없습니까? 기도 없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교만함은 없습니까? 아간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 우리 속에 감춰진 죄를 교만함의 죄, 탐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