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무리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4월 5일이 ‘종려주일’이었는데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오늘 본문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종려주일’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며 손에 들고 흔들고 있는 종려나무는 ‘의’, ‘아름다움’, ‘승리’를 상징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줄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기대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길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서 있었습니다. 이 날 모인 큰 무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무엇이라 외쳤는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 13절 말씀 입니다.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호산나’란, ‘구원하소서’란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 ‘호쉬아’와, ‘이제’ 또는 ‘지금’을 의미하는 단어 ‘나’를 합성한 단어 입니다. 따라서 “호쉬아 나”란 말의 뜻은 ‘이제 나를 구원하소서.’ (Save me, now)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 118편 25절에 딱 한 번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시118:25)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사렛 예수가 그들을 로마 제국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왕좌에 올라 이전 구약시대에 다윗 왕이 세웠던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군사력이 강한 새로운 다윗 왕국을 세우실 것을 꿈꿨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 제국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세워 온 세계 위에 으뜸이 되리란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50년 8월 15일 한국의 모습은 어떠 했습니까?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기쁨에 전국의 각 지역에 모든 국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사건 입니까? 30년이 넘는 일제 강점기의 종식을 선언하는 국민들의 가슴에는 희열과 흥분이 넘쳐 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낀 감정이 그와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되시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니, “이스라엘 독립 만세”의 마음으로 “호산나! 호산나!”하고 외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제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소서!”하고 소리치며 예수님을 환영 했습니다. 이 날 얼마나 많은 인파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날 모였는지 바리새인들의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19절 입니다. “(요 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바리새인들의 말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며 기쁨으로 저를 영접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들의 구원자 되심을 확신하며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얼마 전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과 특별히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 전국에 퍼졌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신 일, 성난 파도를 잠잠케 하신 일,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사건도 분명 엄청난 기적 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야말로 백성들이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였던 것입니다. 17-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2: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요 12: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자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들은 무리에게 자신들이 본 기적을 증거하며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언 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찾아온 온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예수님 가시는 길에 깔아 놓고 있습니다. 큰 함성을 지르며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타고 계신 것이 바로 어린 나귀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계신 것이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언의 성취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4-15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요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요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메시아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온다는 이 예언의 내용은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구약에 메시아에 관해 기록된 내용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것이 예언의 성취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16절 말씀 입니다. “(요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예수님은 구약에 메시아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심으로써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친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죄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기대한 바대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가 되실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호산나”를 외치던 이 동일한 무리가 후에는 빌리도를 향해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 날 모인 무리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것 입니다. 우리들도 나 자신의 소원이나, 내 탐심을 위해 교묘하게 예수님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주님 가신 길을 뒤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 때문에, 혹은 바리새인들의 위협 때문에 자신이 맡은 사명의 길을 바꾸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려면, 먼저 우리가 가진 세상의 탐욕과 육체적인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온 정성을 다해 따르고 섬겨야 할 우리의 참 하나님 되십니다. 이러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순종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